2023. 8. 9.
골프를 치고 왔다. 오후부터 몸이 처지더니 골프에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머리가 아팠다. 많이 추운 날씨는 아니었는데 오랜만에 밖에서 긴 시간을 보냈더니 감기가 오려는 것처럼 몸이 으슬으슬했다. 집에 오자마자 씻고 누워버렸다. 몸 상태가 괜찮았으면 평소처럼 골프 칠 때 입었던 옷을 얼른 세탁하고 청소기를 돌렸을 것이다. 그럴 수가 없었다. 내 몸에서 '빨리 자라고!' 하는 외침이 들렸다. 남편은 내가 편하게 쉴 수 있도록 이부자리를 펴주고 전기담요를 연결해 주었다. 내가 저녁 메뉴를 걱정하지 않도록 남편은 피자를 사 오겠다고 했다.
전기담요 위에서 나는 잘 자고 일어났다. 남편이 아이들을 학교에서 데리고 오면서 피자를 사 왔다. 따뜻할 때 먹어야 맛있으니 바로 먹었다. 맛있었다. 내가 언제 몸이 안 좋았나 싶은 생각이 들 만큼 몸이 괜찮아졌다.
내가 아프다고 말했을 때 남편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나를 걱정하고 배려하며 챙기는 모습을. 해야 할 일을 두고 방에 누워있는 것이 불편했지만 남편은 내가 편하게 쉴 수 있도록 살뜰히 챙겨주었다. 나는 남편이 아프면 걱정에 휩싸이는데 남편에게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남편이 아프면 내가 얼마나 힘들어질까를 걱정하는 것 같다. 갑자기 미안해진다.
마음이 따뜻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다정함일까. 추웠던 내 몸은 남편의 다정함에 따뜻해졌다. 그 다정함이 전염되고 나한테 물들면 참으로 좋으련만. 수십 년간 길러진 그 마음은 좀처럼 내게 쉽게 다가와서 안착하지 않는다. 덜 단호하고 더 다정하게 살고 싶다.
피자를 먹고 배부른 상태로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보는데 지인에게 메시지가 왔다. 지난주에 나는 그에게 밥을 사겠다고 식당과 메뉴는 본인이 원하는 대로 정하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가 추천한 식당은 내가 보기에 비싸보였다. 잠시 마음이 복잡해진다. '저렴한 곳으로 가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과 함께 그에게 얻어먹은 밥의 가격을 매기는 쪼잔한 내가 튀어나온다.
다시 생각한다. 그는 나를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직접 차려주는 정성을 보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나를 빈손으로 보내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고마워했다. 내가 살 차례가 되니 마음이 변하고 좀스러워진다. 나는 왜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에게 너그럽고 관대하고 통이 크지 못할까. 왜 이렇게 못났을까.
가족에게 받은 상처가 내 마음을 후벼 파고 그 상처가 자주 떠오를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나를 따뜻하게 감쌌던 많은 사람들을. 아직 나에게는 다정해질 기회가 있다. 몸이 아픈 지금, 너무 낙담하지 말자. 어쩌면 나에게도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자상함이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