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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시작하는 마음 Aug 23. 2023

충고 안 들어~

조카의 도전을 응원하며

이미지 출처: JTBC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온 남편이 크게 한숨을 쉰다. 

"답답한 일이 생겼어."

나는 두괄식을 좋아하는데. 질문을 해야 핵심을 알 수 있는 이런 문장이 싫다. 가슴이 떨리기 시작한다. 남편에게 물으니 시누이의 아들 A에게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다.

"A가 학교 그만두고 군대 갔다 와서 사업한대." 

남편이 속상한 얼굴로 말했다.


A는 대학생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병역 특례 제도를 통해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하면 병역의 의무를 인정받는 대학에 다니고 있다. 착실히 대학교를 졸업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대학을 1년 반 다닌 A는 이번 학기부터 휴학을 하겠다고 한다. 아이의 느닷없는 결심에 놀란 시누이가 남편에게 전화를 했고 이어 남편은 조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A가 대입 수시원서 접수를 앞둔 시점에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을 때 남편이 그 대학을 추천했다. 자신이 다녔던 대학이다. 남편은 자신이 지나온 길이라 익숙하고 그래서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A도 외삼촌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당시 A의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았다. A의 아버지의 사업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A의 어머니와의 관계도 삐걱거렸다. 친척들은 A의 선택을 기특하다고 칭찬했고 대학을 졸업하면 안정적인 직장을 구할 것이라고 안심했다.


모든 것이 정해진 안전한 길을 버리고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는 A를 보며 남편도 시누이도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아버지의 사업이 잘 되지 않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은 아이의 선택이 다시 사업이라니. 시댁에서 '사업'은 알게 모르게 금기어였다. 


A가 철이 없는 걸까. 어른들이 무지한 걸까. 박노해 시인의 말대로 미래에서 온 아이의 삶에 어른들이 함부로 간섭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이해하면서도 막상 눈앞에 닥친 아이의 결심 앞에서 우리는 그 말을 외면하고 싶었다. 

"뭐가 급하다고 벌써부터 사업을 시작한대."

"일단 졸업부터 하지."

"사업이 뭐 쉬운 줄 알아."

"사업한답시고 엄마 돈 갖다 쓰면 어쩌려고."


우리의 걱정은 타당하고 합당하다. 그러나 성인이 된 아이의 결단을 꺾을 수 없다. 우리의 걱정은 힘이 없다. 남편이 여러 자료를 보내주며 A를 설득해보려고 했지만 아이는 단호했다.


20대는 무엇이든 도전하고 실패할 수 있는 나이면서 어른들의 조언이 필요한 시기이다. 20대의 나는 어른들의 조언이 필요했고 조언을 자주 구하러 다녔다. 직장 상사나 선배 교사의 말을, 용하다는 역술인의 말도 참고했다. 충직하게 그들의 가르침을 따랐다. 그래서 나는 잘 살았을까.


어른들의 조언은 옳고 바르다. 그 틀림없는 말들을 내 몸에 새기다 보니 나중에는 버거웠다. 나에게 맞지 않은 말도 있었다. 내가 통과하는 시기와 조언이 일치하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내가 멈춰야 할 때 조언이 나를 달리게 하기도 했다. 충고는 간섭일까 도움일까. 어른들의 말을 안 들으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나는 다른 사람의 판단에 나를 맡겼다. 힘들어도 남들이 원래 그런 거라고 하면 그렇게 믿고 꾸역꾸역 살았다. 남이 가르쳐 준 안전한 길로만 조심조심 다녔다. 크게 잘못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뭔가 아쉽다. 내 인생을 남에게 통째로 맡겨버린 기분이다. 나다운 결정을 해보지 못하고 남에게 끌려다녔다. 


다행히 A는 자신의 결정에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 두렵지만 해보겠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용감했다. 아직 어떤 것도 해보지 않은 아이에게 해보지도 않고 안된다고 하는 것이 어른의 일일까.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길을 가보게 하는 것이 어른의 일일까. 나는 어떤 어른일까. 있는 힘껏 조카의 도전을 응원하고 격려해주고 싶은 마음과 실패에 대한 걱정과 불안함이 왔다 갔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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