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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시작하는 마음 Aug 12. 2023

비싼 밥 먹고 욕하기

내가 인색한 걸까, 그가 무례한 걸까.


지인과 밥을 먹었다. 일주일 전에 나는 지인에게 밥을 사기로 하고 식당과 메뉴는 그에게 선택하라고 했다. 그는 집 근처에 있는 식당을 추천했다. 식당 가기 전, 나는 구글에서 식당에 대한 리뷰를 읽었다. 깜짝 놀랐다. 음식의 가격이 내 예상의 2배가 넘었다.

'설마, 이런 곳에서 밥을 먹자고?'

불안했다. 나는 지금 수입이 없기 때문에 남편의 카드로 음식값을 결제해야 한다. 남편은 내가 나에게 쓰는 돈을 아까워하는 것을 알고 있다. 외출을 준비하는 나에게 남편은 말했다.

"돈 걱정하지 말고 맛있게 먹고 와."

하지만 외식비는 정말 아깝다.


찜찜한 마음을 숨긴 채 지인을 만났다. 구글에서 검색한 내용을 토대로 나는 그 식당에서 인기 있는 메뉴 두 개와 물을 주문했다. 내가 지인에게 물었다.

"전에 이곳에 오신 적이 있나요?"

"와봤지. 이 식당 오픈할 때 왔고 올해 초에 누가 사준다고 해서 한 번 왔고."

지인이 이 식당에 대해 전혀 모르고 선택한 것이 아님을 나는 확신했다. 밥을 먹는 내내 나는 음식값을 걱정했다. 점점 쪼잔해지는 내가 싫어졌다.


나는 음식값의 10%에 해당하는 팁을 포함해서 약 6만 원 정도를 음식값으로 썼다. 칠레의 물가가 한국의 1.5배 정도 되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2명이 밥을 먹으며 지불하기에는 꽤 큰돈이다. 그 돈이면 아이들과 햄버거를 두 번은 사 먹을 수 있는데. 돈이 아까웠다. 돈을 낭비한 것 같아 속상했다. 그와 많은 시간을 오늘 같이 보냈다. 내가 제일 소중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나는 그에게 기꺼이 내주었다. 남편과 같이 있는 게 나는 더 좋은데. 시간마저 아까웠다.


내가 인색한 걸까, 그가 무례한 걸까. 하루 내내 이 물음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남이 밥을 사겠다고 하는데 그렇게 비싼 음식을 추천할 필요가 있을까. 이것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배려의 문제이지 않나. 예전에 그가 나에게 밥을 같이 먹자고 말했을 때 내가 먼저 음식값은 각자 계산하자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한 나의 배려였다. 그에게 섭섭했다. 앞으로 그와의 만남이 꺼려질 것 같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나는 아직도 두렵고 어렵다. 이 사람은 이래서 싫고 저 사람은 저래서 부담스럽고. 도대체 나는 사람을 대하는 것이,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왜 이렇게 힘든 걸까. 그냥 대충 넘어갈 수는 없는 걸까.


나는 관계에서 기브 앤 테이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받은 만큼 꼭 돌려주려고 한다. 준 만큼 돌아오지 않으면 엄청 서운해한다. 그것이구나. 기브 앤 테이크. 주고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명제는 내 머릿속에 없었다. 내가 가족들에게 느꼈던 여러 감정 중 서운함이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 알겠다. 나는 서운했구나.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문제였다.


내가 일상에서 자주 느끼는 감정은 서운함이다. 가족들에게 잘하려고 노력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더 많은 요구일 때, 한국에서 지인들에게 연락이 오지 않을 때, 직장에서 내가 애쓰면서 했던 일에 대해 누군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때 나는 서운했다. 타인이 내 마음을, 노력을 충분히 알아주지 못할 때 나는 서운함을 느낀다. 감정의 정체를 확인하고 나니 내가 그리고 상대가 덜 미워진다. 그래, 서운해 할 수 있지. 그래, 사람 마음이 다 나와 같을 수 없지. 이해가 된다. 


'불안'과 함께 내가 돌봐야 할 감정이 하나 늘었다. 서운함. 관계에서 불편함이 느껴질 때 이게 서운함인지 아닌지 점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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