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8. 23.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편안한 마음으로 소파에 푹 꺼져 있었다. 요즘 재미있는 드라마 '무빙'을 열심히 보고 있었는데 학교에서 메시지가 왔다. 비가 와서 학교가 쉰다고. 얼른 남편에게 전화해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오라고 했다.
'비가 온다고 학교가 쉬어? 칠레는 이해가 안 돼!'
어이가 없었다.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칠레에 대해 알면 그럴 수 있는 일이다. 이게 다 이상 기후 때문이다. 원래 칠레는 비가 잘 오지 않는 곳이다. 눈 내리는 것은 정말 보기 어렵다. 겨울이 우기인 칠레에 요즘 들어 비가 계속 오고 있다. 어젯밤에도 비가 내렸다. 칠레의 비는 한국과 다르다. 추적추적 온다. 폭우가 쏟아지지는 않는다. 잠깐씩만 내리던 비가 계속 오면 칠레 산티아고는 난리가 난다. 배수 시설이 잘 갖춰져 있지 않아서다. 도로에 물웅덩이가 생겨 걷다가 또는 운전하다가 물폭탄을 맞게 된다.
알면 이해하게 된다는 말을 조금 알겠다. 이해하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도 알지만 아직 나는 칠레와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 썸도 타지 않았다. 이해하니까 받아들이는 정도. 끝내 나는 이 나라를 좋아하게 될 것 같지 않다. 이 나라에 살았던 시간을 좋아하는 것으로 정리가 될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갑작스러운 일이 생길 때마다 주변인들의 도움이 고맙다. 혹시 내가 학교에서 연락을 받지 못했을까 봐 직접 전화해서 휴교한다는 것을 알려준 지인이 고마웠다.
칠레에서 17년가량 살며 교수로 근무했던 민원정 교수가 요즘 유튜브에 출연해서 칠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칠레의 역사에 대해 알고 나니 이곳에 살며 내가 느낀 의아함이 납득으로 바뀌었다. 칠레에 대한 궁금함, 생소함, 호기심 등이 해소되고 있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어떤 사람의 역사에 대해 알고 나면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어떤 사람과 술 한 잔을 하고 나면 그 사람과 어깨동무하고 있을 거라던 글.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모든 사람과 그럴 수 있을까. 술 한 잔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고 그마저도 하기 싫은 사람이 있다. 나에게는 물 한 잔조차 주기 아까운 사람들이 있다.
'절대로, 반드시, 꼭, 모든'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성급함과 위험함을 알아가고 있다. 반드시 그래야 되는 일은 없고 절대로 안 되는 일은 없고 꼭 그래야 되는 것은 아니며 모든 일이 다 그렇지도 않다. 칠레에서는 비가 오면 학교가 쉬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