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0. 3.
칠레의 날씨가 그렇다. 봄이 자리 잡고 곧 여름이 올 것처럼 해가 뜨거운 날이 며칠 동안 지속되었다. 어제부터는 다시 흐리고 오늘은 비가 온다. 손님을 초대하며 집이 깔끔해 보이고 싶어서 거실에 두었던 전기난로를 드레스룸의 빈 공간으로 옮겼다. 다시 꺼내야 된다. 힘든 일은 아니지만 좀 귀찮다. 나의 선택이, 생각이 틀렸음을 깨닫고 바로 잡는 일은 왠지 불편하다.
"칠레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
칠레에서 우리보다 먼저 자리 잡은 남편 친구가 남편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칠레에서는 행정처리뿐만 아니라 사소한 문제도 해결할 때는 절차가 복잡하고 오래 걸린다는 뜻이다. 다 끝났다고 안심하는 순간 다른 절차가 기다리고 있는 현실. 절대로 여기서는 마음을 놓지 말라는 경고다. 한국이 아니기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으니까.
어제부터 칠레의 '사이버 데이(Cyber Day)'가 시작되었다. 내일까지다.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면 할인을 많이 해준다. 어젯밤에 나와 남편은 여행 가방을 샀다. 할인하는 시기에 사서 다행이다. 항공사로부터 받은 보상금으로 충분히 해결되는 가격이다. 할인한다고 하면 생각지도 않았던 물건이 갑자기 중요해지고 필요해진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주문하고 있는 나를 늦게 발견할지도 모른다. 다행히 스페인어로 된 사이트의 물건을 하나하나 신중하게 보다 보면 지쳐서 쇼핑을 그만두기도 한다. 어제는 쇼핑에 지쳐 잠이 들었다.
내가 돈을 벌고 있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샀던 물건을 이제는 사려다 망설인다. 화면만 한참을 들여다본다. 고민하고 있다는 것은 별로 중요한 물건이 아니라는 뜻이다. 사고 싶은데 꼭 살 필요는 없는 물건들. '한 번 써볼까?' 하는 물건들을 사서 집에 쟁여놓고, '한 번 먹어볼까?' 하는 음식들을 사서 많이 먹고, '한 번 입어볼까?' 하는 마음에 샀던 옷들을 입지 않고 옷장에 두었던 날들이 내게 있었다.
지금은 내가 돈을 벌지 않고 집에 물건을 쟁여둘 빈 공간이 없으며 먹어보고 싶은 음식들은 너무 생소해서 실패할 확률이 높다. 쇼핑도 소비도 결국 나와 나를 둘러싼 상황을 명확하게 알아야 합리적일 수 있다.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지금, 당장 사야 해!"라고 나에게 말하지만 나는 "잠깐 기다려봐! 생각 좀 해보고." 하며 결정을 미루고 있다. 오늘은 꼭! 필요한 큰아이의 티셔츠를 살 것이다. 나의 쇼핑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주문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