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는 꽉 차있는데 먹을 게 없어

2023. 10. 29.

금요일부터 오늘까지 삼일 동안 연휴다. 아홉 끼의 식사를 차려야 한다. 이제 두 끼만 남았다. 다행히 쉬는 날에는 남편이 아침에 간장계란밥을 만든다. 그것만으로도 하루에 한 끼가 해결되어서 좋다. 일단 점심은 떡볶이를 하겠다고 아이들과 남편에게 이야기해 놓았다. 저녁은 더 고민해 봐야겠다.


연휴 전날 시장에 갔고 연휴 첫날에는 마트에 다녀와서 냉장고는 가득 차있다. 그런데 뭘 먹을지를 생각하면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내 음식 솜씨의 한계인 것 같다. 먹는 것을 좋아하지만 음식을 만드는 것은 힘들다. 요리는 누군가와 같이 할 수 없는 외로운 노동이다. 음식값을 받는 것도 아니고 매번 맛있다는 칭찬을 듣는 것도 아니며 먹는 사람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니 생색도 나지 않는다.


휴일에는 나도 노동을 쉬고 싶다. 청소는 쉴 수 있지만 끼니는 그렇게 할 수 없다. 하기 싫은 몸을 기어이 일으켜 세워서 주방으로 간다. 냉장고를 비워야 한다는 의무감과 함께. 한국에서의 외식이 몹시 그립다. 반찬 가게, 밀키트, 김밥 천국의 도움이 간절하다.


이곳에서 요리를 조금씩 시작한 남편 덕분에 예전에 비해 끼니에 대한 부담감은 좀 줄었다. 요리를 해 본 남편은 요리가 힘든 것임을 알았는지 아니면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에 공감(?)했는지 될 수 있으면 간단하게 먹자는 이야기도 할 줄 안다. 결혼 초에는 남편의 "간단하게 볶음밥이나 먹을까?"라는 말에 나는 발끈하며 "간단한 볶음밥이 세상에 어디 있어!"라고 받아쳤다. 요리 노동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남편의 말에 화가 났다. 지금은 끼니때가 가까워지면 예민해진 나를 남편이 편하게 해 주려는 눈치도 조금씩 생겼다.


요리하는 시간 대략 1시간, 먹는 시간 30분, 설거지하고 정리하는 시간 30분, 총 2시간을 나는 끼니를 해결하는 데 쓴다. 돈으로 해결해도 되지만 내 주머니 사정으로는 불가능하다. 이럴 때는 억지로 긍정 회로를 돌리거나 의미를 부여하면 된다.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우는 일이라고, 나도 건강한 식단으로 먹을 수 있다고, 생활비를 아낄 수 있다고. 그것도 안되면 그냥 툴툴대면서 하면 된다. 저녁은 우리 대충 피자나 사 먹자고.


요리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매번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내 마음은 계속 변하고 있구나. 싱크대 앞에 서 있는 내 마음은 다시 어떻게 달라져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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