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들이 그리워

2023. 10. 31.

산책을 했다. 외출하기 싫어하는 나를 남편은 아이스크림으로 꼬신다. 남편은 일부러 집 근처에 있는 맥도널드에 가서 콘을 하나 먹으면 산책이 마무리되는 코스로 나를 유인한다. 가격이 크게 부담되지 않는 콘을 먹기 위해 나는 군말 없이 얼굴에 선크림만 바르고 선글라스를 챙겨서 나간다.


내가 가는 맥도널드는 쇼핑몰 푸드코트의 가장 안쪽에 있다. 남편과 나는 창가 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내가 남편에게 말했다.

"매일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되게 힘이 된다. 그렇지만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나눴던 가벼운 수다가 그리워."

서로를 걱정해 주는 말 한마디, 직장 상사에 대한 험담, 같이 이야기하며 먹었던 급식, 복도에서 만난 선생님이 건네는 농담. 오늘은 이런 것들이 그리웠다. 아니 그동안 계속 그리웠는데 남편에게 오늘 털어놓았다.


나는 이야기가 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은 걸까, 그것도 아니면 일하면서 칭찬받고 싶었을까. 병가와 휴직을 연달아 신청하며 도망치듯 떠나온 직장이 왜 다시 그리워진 걸까. 일하기는 싫은데 다시 직장에 가고 싶은 이 마음은 뭘까.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한국으로 돌아가서 학교에 출근할 생각만 하면 곧장 우울해지곤 했는데 요즘은 살짝 설레기도 한다. 나에게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걸까.


학교만 그리운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없는 시간에 남편과 같이 갔던 스크린 골프장, 카페에서 같이 마시던 아이스 바닐라 라떼, 아이들을 재우고 같이 먹었던 치킨과 맥주. 그리운 것들이 모두 사소하고 당시 나에게는 당연한 것들이다. 사소하고 당연한 것들. 이쯤에서 교훈적인 이야기로 마무리를 하려면 '사소한 것에 감사하자!'로 연결시켜 글을 끝내야 되는데. 당연한 것에 감사하기는 어려우니까 다른 이야기로 마무리해야겠다.


사소한 것이 그리운 이유는 사소한 것에 마음이 많이 쓰여서다. 사소한 것에 상처받고 사소한 것에 위로받고. 그 사소한 것이 모여 큰 결심과 큰 사건을 만들기도 한다. 사소한 시간이 모여 내 하루가 되고 결국에는 내 인생이 된다. 사소한 것은 나에게 소중했고 중요했다. 타인이 무심코 한 행동이 나를 거슬리게 할 때마다 내가 관계에서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확인했고 누군가의 가벼운 말을 놓치고 나서 나중에 후회했다.


예민한 감각을 갖고 태어난 나는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느껴야 했다. 그것 때문에 힘들었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베푼 친절과 배려를 더 많이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덕분에 나도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사소한 것에도 마음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소한 말도 신중하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소한 것부터 잘 챙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쩌면 그것은 삶을 살아가는 중요한 기술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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