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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시작하는 마음 Dec 06. 2023

도망갔다 다시 돌아오는 거 잊지 마

일에서 자꾸 도망치는 나에게

해야 할 일을 두고 드라마로 책으로 도망치는 며칠을 보냈다. 일기를 쓰면 도망치고 있는 나를 만나야 하기에 노트북을 열지 못했다. 1월에 긴 여행을 가려고 한다. 한 달짜리 여행이라 준비할 것이 많다. 할 일이 많거나 무겁다고 느껴지면 나는 그 일을 곧바로 시작하지 못한다. 뜸을 들이다가 도망치고 혼자 스트레스를 받다가 결국에는 마감 날짜에 임박해서 후딱 일을 처리해 버린다.


그런 습관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나는 왜 그러는 걸까. 완벽해지고 싶은 걸까. 잘하고 싶어서 시작하기가 두려운 건가. 몇 번이나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확인하면서도 쉽게 시작하지 못했다. 이 드라마만 다 보면 할 거야, 이 책만 다 읽고 할 거야 하면서 며칠을 더 미루다 결국 노트북 앞에 앉았다. 더 미루면 내가 나를 너무 미워할 것 같아서다.


이런 나를 남편은 이해하지 못한다. 매일 조금씩 하면 될 텐데 왜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일을 미루냐고 한 마디씩 한다. 나도 그러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만 남편은 내 마음을 알리가 없다. 나도 내가 왜 그러는지 모르니까. 지금까지는 내가 게을러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다음에는 내가 잘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라고 헤아렸다. 근데 지금은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그냥 시작하면 된다는 것을 알면서 미루고 있는 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용기일까. 용기 있게 노트북 앞에 앉았으니 그다음엔 뭐가 필요할까. 늦지 않았으니 조금씩 해보자는 격려일까. 여행 계획은 보통 내가 혼자 짠다. 이런 내 마음을 나는 남편에게 털어놓지 못했다. 또 잔소리할 게 뻔하다. 남편과 이야기하면 마음이 좀 가벼워질까. 


어제 자면서 꿈을 꾸었다. 누군가 내 발을 정성스럽게 만졌다. 못난 내 발가락까지. 창피한 마음이 들면서도 싫지 않았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내 못난 모습까지 인정하고 감싸주는 태도가 아닐까. 남도 나에게 그렇게 다그치지 않는데 나만 나를 그렇게 몰아붙였던 것 같다. 꿈에서 깨어나서 왜 그런 꿈을 꾸었을까 궁금했는데 이제 그 꿈의 의미를 알 것 같다. 


나는 못났지만 그래도 괜찮다. 꿈에서 만났던 그가 내 발을 쓰다듬었듯이 나도 그렇게 내 마음을 어루만져야겠다. 오랜만에 꿈에 나타난 그가 오늘 나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사진: Pixabay, Gerd Altmann님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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