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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시작하는 마음 Dec 02. 2023

칠레에서 두 번째 맞는 당신의 생일을 축하해

사랑하는 남편에게

사랑하는 남편, 가끔 나는 이런 생각을 해. 어쩌다 우리는 칠레까지 오게 되었을까? 어쩌다 우리는 만나서 사랑하게 되었을까? 결혼까지 했을까?


운명을 믿지 않던 20대의 나는 당신과 살면서 운명을 받아들이는 40대가 되었어. 10대, 20대의 내가 운명을 믿었다면 나는 희망을 품지 못했을 거야. 30대를 살아내면서 운명이라는 것이 있고 그것을 만드는 것은 내 몫이라는 생각이 확고해졌어. 앞으로의 나는 나에게 오는 모든 기쁨과 슬픔을 기꺼이 받아내는 삶을 살 거야. 당신과 함께 매일 삶은 살만한 것이라고 긍정하고 싶어.


성숙하지 못하고 온전하지 않은 내 인생에 당신을 끌어들이는 일이 처음에는 두려웠지만 당신에게 의지하면서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었어. 이제 나는 당신과 함께 오는 어떤 것이라도 환대해 보려고. 당신이 나에게 했던 것처럼. 우리가 함께 했던 14년의 세월이 나에게 그런 용기를 주었어.


당신의 말, 행동, 외모, 생각 그 모든 것들을 나는 사랑해. 가끔 보이는 옥에 티는 빼고. 당신도 어쩔 수 없는 지질함은 이해할게. 나는 나를 구원해 줄 백마 탄 왕자와 결혼한 것이 아니니까. 내가 공주가 아닌 것처럼.


우리에게 운명적인 첫 만남이 있지 않았지만 앞으로 같이 좋은 운명을 만들어보자. 우리에게 온 가장 좋은 운명인 똥꼬들이 자기 삶을 잘 열도록 옆에서 아니 한 발짝 뒤에서 지켜주자. 우리에게 선물처럼 주어진 이 시간을 잘 보내고 앞으로 더 좋은 시간을 우리에게 선물하자.


칠레에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아쉬워. 당신과 이렇게 웃고 떠들고 이야기하며 지냈던 시간이 없었잖아. 앞으로 우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든 이 시간을 기억하고 추억하며 서로를 아껴주자. 불행하다고 느낄 때마다 우리에게 이런 시간이 있었다고 자꾸 말해주자.


이번 생일에는 당신이 좋아하는 당근 케이크를 꼭 사줄게. 같이 먹으면서 행복해하자. 사랑해. 태어나서 나에게 와주어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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