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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시작하는 마음 Nov 17. 2023

나에 대해 물어줘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해?

한국에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 A가 있다. A와 나는 동료 교사로 만나서 아이 친구의 엄마로 관계를 발전시켰다. 부부끼리도 가끔 만나는 사이다. 그는 나에게 먼저 연락하고 가끔씩 선물을 주고받으며 서로 마음을 나눴다. 그는 내가 번아웃 때문에 힘들어서 병가와 휴직을 했을 때 나에게 자주 전화를 했다. 그와 1시간 넘게 통화를 하고 나면 나는 지쳤다. 그리고 마음에 찝찝함이 남았다.


처음에는 우울한 나에게 그가 일부러 시간을 내서 전화를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고마웠다. 심심하고 말할 사람도 없던 차에 잘 되었다 싶었다. 하지만 그가 나에게 전화를 하는 횟수가 잦아지자 슬슬 불편했다.

'내가 한가하다고 생각하나?

'왜 나에 대해서는 묻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 할까?'

'나는 그의 감정 쓰레기통일까?'

'그는 나를 험담을 들어주는 도구라고 생각하나?'


그가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험담을 할 때는 아무 공감도 해줄 수 없어 나는 답답했다. 나는 왜 이런 이야기를 계속 들어줘야 할까. 그와의 전화통화를 끝내지 못하는 나를 원망했다. 어떤 날은 일부러 전화를 피하기도 하고 통화를 하다 다른 일이 생겼다는 핑계를 대고 전화를 끊었다.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칠레로 오면서 자연스럽게 A와의 연락이 뜸해졌다. 그러다 최근에 그는 가끔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나에 대한 질문은 없다. 바로 험담이나 자신의 상황에 대한 한탄부터 시작한다. 가끔은 A로부터 오랜만에 지인들의 소식을 들을 수 있어 반가웠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메시지에 답장도 해주었다. 어제는 아침에 불쑥 인사도 없이 메시지로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그를 받아주느라 난감했다.


오늘 갑자기 그가 생각났다. 생각은 '도대체 왜 내 주변에는 이런 사람들만 있을까?'로 연결되고 말았다. 나의 엄마는 아빠에 대한 험담을 나를 만날 때마다 쏟아냈었다. 엄마와 연락을 끊으면서 그것으로부터 해방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사람을 만나다니. 사람들은 왜 나한테 이러는 걸까. 내가 쉽고 만만할까. 말할 수 없이 속상했다.


나는 타인에게 존중받고 싶다. 내 이야기도 하고 싶다. 누군가가 나에 대해 물어봐주면 좋겠다. 내 이야기를 온전히 들어주면 좋겠다. 나를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이나 도구로 삼지 않으면 좋겠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려고 노력했는데 왜 매번 이런 결과가 생기는 걸까. 나에게도 원인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한국에 돌아가서 다시 A에게 시달릴 생각을 하니 머리까지 아팠다. 그때는 이 관계를 바로 잡겠다고 다짐한다. 타인에 대한 나의 경청은 무엇이 문제일까? 해결되지 않은 감정이 숙제처럼 남아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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