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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시작하는 마음 Dec 28. 2023

내가 중요하다고 믿는 것은 정말 중요할까?

여행 계획을 세우며 나를 점검하다

유럽 여행이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숙소, 이동 방법, 관광 명소, 맛집 등이 빼곡하게 정리된 자료를 만들고 싶어 하나하나 알아보며 예약을 하고 있다. 당장 내일부터 5일간 이스터섬으로 여행을 가기로 되어 있어 마음이 급해졌다. 항상 미리미리 준비해야 된다고 다짐하면서 나는 그것에 자주 실패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타이르며 노트북 앞에 나를 데려다 놓는다.


첫 여행지인 바르셀로나의 숙소 예약에서 나는 막혔다. 스페인의 물가가 싸다고 예상했다. 내가 정한 예산에서 우리 가족에 맞는 숙소를 고르기 어렵다. 호텔만 200개를 넘게 알아봤다. 이제 바르셀로나에 가면 어느 호텔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다 알 것 같다. 남미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느꼈는데 호텔에는 4인 가족을 위한 객실이 별로 없다. 아이들이 나이가 어릴 때는 같이 한 침대에 자면 되고 아이들이 크면 다른 방에 재우면 된다고 간단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아니 호텔 입장에서는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하는 것이 더 경영에 유리할 것이다. 어중간한 나이에 있는 우리 아이들과 한 방에서 지낼 수 있는 호텔을 찾는데 이틀이 걸렸다.


숙소를 알아보는 동안 나는 배가 자주 아팠다. 약을 먹고 또 먹었다. 오늘은 커피를 끊고 밥도 먹지 않았다. 내일 떠나는 여행을 위해 좋은 컨디션을 만들어야 한다. 여행 계획을 짜면서 힘들 때마다 한국에 가고 싶어 진다. 한국에 가면 바빠서 여행 갈 일이 없을 테니. 여행이 싫으면서 좋고 좋으면서 싫다.


어디를 여행하든 나는 숙소 예약에 시간과 정성과 노력을 많이 들인다. 왜 그럴까. 자는 게 나에게 그렇게 중요한가. 호텔 객실에 TV와 물 끓이는 주전자가 있는지 확인하고 침대는 나와 남편을 위한 더블 침대 한 개, 아이들을 위한 싱글 침대 두 개가 있는지 찾는다. 객실 넓으면 좋겠다. 에어비앤비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여행지에서까지 요리를 하고 싶지 않아 호텔을 선호한다. 컵라면이나 햇반만으로도 한식에 대한 욕구는 충분히 해소할 수 있다.


객실 하나에 더블 침대 두 개가 있는 호텔이 가끔 있지만 선택하기 꺼려진다. 지난 미국 여행에서 아이들을 한 침대에 재웠더니 아이들로부터 불평이 끊이지 않았다. 그 민원을 해결하느라 지쳤던 기억이 떠올라 그 호텔을 예약하지 않았다. 여행지에서는 불편한 것을 참아야 한다고 고장 난 라디오처럼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도 아이들은 절대로 불편함을 견디려고 하지 않는다. 이럴 때마다 생각은 '이것들이 고마운 줄도 모르고'로 이어진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싫어져서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이틀이나 고민했음에도 호텔을 끝내 예약하지 못한 내가 너무 싫어져서 오늘 아침에는 침대에서 늦게 일어났다. 아침도 먹지 않고 약간 무기력한 상태로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래도 오늘치의 내 인생을 성실하게 살아내기 위해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며칠간 손에서 놓았던 전자책 리더기를 집었다. 읽고 있던 사회학 책을 과감하게 접고 내가 좋아하는 에세이를 한 권 다운로드하였다. 얼른 읽고 싶다는 생각에 갑자기 몸에 생기가 돌았다.


한 달짜리 여행에 준비만 한 달이 걸리다니. 돈 버느라 바쁠 때는 패키지여행을 다니며 돈으로 시간을 샀다. 지금은 돈은 없지만 시간이 많으니 모든 것을 직접 알아보고 결정해야 한다. 삶도 그렇고 여행도 그렇고 내게 주어진 많은 것들이 완벽하지 않다. 나도 완벽하지 않은 것처럼. 그럼 내 여행 계획도 좀 빈틈이 있어도 되지 않을까. 딱 맞게 짜인, 모든 게 딱 떨어지는 계획이란 게 있을까.


절대로 실수가 없어야 하고 모두를 만족시켜야 하고 누구도 불편함이 없는 여행이 가능하기는 한 걸까. 여행 준비를 할 때마다 수없이 하는 생각이지만 막상 여행지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이 생기면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나를 탓한다. 여행이 매 순간 두렵다. 과정을 즐기지 못한다. 목적지에 가야만 마음이 놓인다. 나에게 여행은 무엇일까. 돌봄 노동의 연장일까.


첫 여행지의 숙소 선정에서 막혀버린 내 여행 계획이 다시 술술 풀리기를 바란다. 내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게 정말 중요한 것인지, 나만 중요하다고 믿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야겠다.


사진: Pixabay, Peggy und Marco Lachmann-Anke님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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