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2. 31.
간밤에 잠을 설쳤다. 한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새해 인사를 하고 메시지로 대화를 나눴다. 나는 밤에 보내고 그들은 아침에 받는 상황이었다. 저녁에 마신 커피 한 잔과 대낮의 나른함을 이기지 못하고 잔 잠 때문에 나는 거의 잠을 못 잤다.
피곤할 줄 알았는데 오늘은 그럭저럭 잘 보냈다. 요즘은 적게 먹으려고 노력한다. 체중 때문이기도 하지만 속이 불편하면 기분도 따라서 나빠진다. 그럭저럭 잘 보낸 하루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뭐든 애쓰고 노력해야 잔잔한 일상을 보낼 수 있다.
칠레에서는 새해가 와도 느낌이 별로 없다. 이곳은 지금 여름이라 연말의 추운 분위기가 아니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기온이 낮아져 마음까지 스산한 느낌이 들어야 연말 같고 새해가 오는 것 같다. 칠레는 지금 축제 분위기다. 밤늦게까지 공원에서 노는 사람들 때문에 시끄러워서 잠을 이루지 못할 지경이다. 마트에서는 와인이 40% 할인 중이다.
칠레에서 맞이하는 마지막 새해가 오고야 말았다. 우리 가족은 2023년에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과 2024년의 계획을 적어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몇 년 전부터 연말에 늘 하던 행사다. 작년에 세웠던 계획표를 앞에 두고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갖는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시작하기에 앞서 나는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잊지 않는다.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다 끝나면 질문하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평가하지 말자!"
아이들은 아빠의 이야기가 시작되자마자 끼어들고 싶어 몸이 달았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좀 성의 있게 쓰라고 잔소리를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하고 싶은 말을 참는 것도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방법일 테니. 이것도 새해 계획에 넣어야 될까 보다. 나이가 드니 새해에 엄청난 각오를 하지 않는다. 획기적인 계획이 나온다고 해서 내가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적당히 나와 타협하여 내가 지킬 수 있는 소소한 것들만 계획하게 된다. 계획을 실천하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것보다는 그게 더 낫다. 조금 비겁하다는 느낌이 있지만 나이가 드니 그렇게 나를 지켜주고 싶다.
굳이 새해가 아니더라도 나는 수시로 계획을 세우고 변경하고 달성할 것이다. 새해는 다른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지 않고 그냥 지금의 나를 조금씩 고쳐 써보고 싶다. 나와 점점 사이가 좋아지려나 보다. 새해에는 나와 더 사이좋게 지내겠다는 계획도 추가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