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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시작하는 마음 Mar 04. 2024

몸은 칠레에, 마음은 한국에

한국 귀국 준비 시작

39일간의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칠레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흰쌀밥을 지어먹고 나니 좀 살 것 같았다. 평온한 일상을 위해 바삐 움직였다. 한인 마트에 가서 식재료를 샀고 김치를 담갔다. 시차 적응을 위해 잠을 충분히 잤다. 집안 곳곳에 쌓인 먼지를 닦고 밀린 빨래를 했다. 여행이 끝나면 여행기를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마음은 자꾸 한국에 가 있다.


한국에 가려면 100일이 남았다. 그 사이 준비할 것들을 생각하느라 머릿속이 복잡하다. 여행 중 가족의 도움을 받아 한국에서 살 집을 계약했다. 아이들이 다닐 학교와 관련된 문제가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아 계속 한국 홈페이지를 들락날락한다. 한국에서의 생활이 중요하지만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시간도 소중한데 나는 자꾸 현재에서 멀어지고 있다.


조금 기다렸다 해결해도 되는 일임에도 나는 불안함을 느끼고 있다. 내가 세운 계획에 차질이 생길까 봐 그런 걸까. 여행을 하면서도 계획대로 되지 않을까 봐 조바심이 났다. 책을 읽으면서 집중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고는 곧바로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이런 내 모습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싶었다. 조잡한 글이라도 끄적여보고 싶었다. 내가 글쓰기를 그만둘까 봐 나는 걱정하고 있었다.


내일이면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새로운 일상이 시작된다. 일정 시간 동안은 아이들이 없는 고요한 시간을 보낼 수 있고 글도 쓸 수 있다. 아침에 도시락을 싸기 위해 일찍 일어나는 것만 빼고는 모든 것이 괜찮다. 마음속으로 매일 러닝머신에 올라 1시간은 걷겠다고 다짐했다. 여행 중 적게 먹은 덕분에 살은 찌지 않았지만 칠레에 와서 집밥을 해 먹은 지 3일 만에 다시 예전 몸무게로 돌아온 것 같다.


요즘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생기면 "일단 지켜보자!"는 말을 하곤 한다. 예전처럼 당장 해결하려고 달려들지 않는다. 같이 통학하던 아이의 반 친구에게 사정이 생겨 당분간은 남편이 다시 혼자 아이들의 통학을 책임져야 한다. 더 좋은 방법이 없을까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 보았지만 일단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봐야 해답이 나올 것 같다. 좀 더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의 안정된 생활을 위해 지금의 평온함을 훼손시키고 싶지 않다. 몸과 마음이 분리되지 않도록 마음이 지금, 현재, 이 순간에 있는지 자주 확인해야겠다. 앞으로 100일 동안 나는 내 마음을 여기로 데려오느라 꽤 고생할 것 같다. 쏟아지는 칠레의 햇볕을 보며 나는 나를 칠레로 데려왔다. 한국에 가면 오래 그리워할 칠레의 햇볕을 눈으로 몸으로 느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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