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시 시작하는 마음 Apr 15. 2024

나만 아는 칠레 이야기(1)

칠레에 오면 누구나 알게 되는

나의 칠레살이가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 당장 한국에 가자고 하면 얼른 짐을 싸공항으로 달려갈 수 있다. 그래도 칠레에서 남은 시간이 아쉽다. 칠레를 기억하고 싶어서 외출할 때마다 햇빛이 얼마나 눈부신지, 공기는 얼마나 선선한지, 사람들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하게 눈에 담는다. 한국에서 마음이 각박해질 때마다 슬쩍 꺼내보고 위로받고 싶어서다. 신지 작가의 말처럼 나에게도 이런 삶이 있었다고 확인시켜 주고 싶다. 내가 다르게 살았던 시간이 있었다고, 내가 나에게 이런 시간을 선물했었다고 알려주고 싶다.


지인에게 한국에 가고 싶은 마음을 털어놓자 지인이 나에게 말했다. 한국에 도착하는 순간, 칠레가 그리울 거라고. 아마 그럴 것이다. 한국에 가자마자 나는 바빠질 테니까. 모든 것이 그리울 것이다. 여름에 끈적이지 않고 보송한 상태로 잠이 들고 잠에서 깨어날 수 있는 것, 평일에 한가하다 못해 무료했던 시간들, 주말에 몰아서 할 일이 없어서 여유로웠던 시간들, 맥주와 와인, 고기와 과일을 한국보다 싸게 먹었던 것, 늘 안데스 산맥을 볼 수 있는 것, 공원에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것. 다 적으려면 오늘 하루가 모자라다.


나는 칠레의 좋은 점만 알 수밖에 없다. 나는 집에서 가족들이 먹고사는 일만 책임지면 되었다. 그 외의 모든 일은 남편이 했다. 느려터진 행정 처리, 합리적이지 않은 시스템 등 남편이 겪었던 황당하고 이해 불가능한 일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남편이 화를 진정시킬 수 있게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기만 하면 되었다. 나는 칠레라는 나라와 불화할 일이 없었다.


칠레에 살면서 자주 한국을 그리워했다. 누군가는 헬조선이라고 해도 한국이 살기 좋은 나라라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한국 사람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은 적도, 그들이 나쁜 습성을 가졌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없다. 나에게는 모든 게 당연했으니 불평할 것이 없었다.


이곳에 와서 칠레 사람들을 보며 나는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내가 사람들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알게 되었다. 칠레 사람들이 가진 것이 한국 사람에게 없다고 해도 그게 나쁘다고 할 수 없다. 내 글은 한국인과 칠레인을 비교하며 칠레인이 더 낫다는 의도로 쓰는 글이 아니라는 뜻이다. 누군가가 그렇게 칠레가 좋으면 칠레에서 살라는 댓글을 적을까 봐 두려워서 미리 밝힌다.


해 질 무렵 집에서 보는 노을


나는 다정함을 좋아한다. 내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내 옆을 지켜주고 악몽을 꾸며 힘들어하는 나를 말없이 안아주는 남편의 다정함을 특히 좋아한다. 그런 다정함을 칠레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 그것이 내가 칠레를 좋아하는 첫 번째 이유다.


지난 목요일에 나는 밖에 나가면서 시장에 갈 때 쓰는 작은 카트를 가지고 갔다. 버스에서 내리려는데 나보다 먼저 내린 어떤 할머니가 내 손을 말없이 잡아주며 미소를 건넸다. 그 할머니는 내 카트가 무겁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 손길과 미소가 나는 좋았다. 이런 세심한 친절이 처음이라 놀랐다.


칠레에서 내가 처음 경험한 친절은 길을 건널 때였다. 칠레에서는 횡단보도에서 보행자가 길을 건너려고 하면 무조건 차가 멈춰서 보행자가 다 건널 때까지 기다린다. 어떤 운전자는 멀리서 나를 보고 바로 차를 멈춘다. 내가 아직 횡단보도에 도착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나는 이것이 남미 또는 서양의 문화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칠레에서만 그랬다. 작년에 페루에서 생각 없이 길을 건너려다 횡단보도로 돌진하는 차를 보고 놀랐다. 나라마다 달랐다. 유럽에 갔을 때도 칠레만큼 보행자를 배려하는 느낌은 없었다.


누군가 길에서 넘어지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가가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주는 모습도 보았다. 물론 이것은 어느 나라 사람이라도 그렇게 할 것이다. 칠레인의 다정함에 푹 빠진 나는 이런 모습도 예쁘게 보였다. 길거리에서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면 눈짓과 표정으로 인사하는 것도 좋았다. 나도 자연스럽게 따라 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생각 없이 눈인사를 건네는 나를 본다면 사람들은 아마 나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인종차별을 당했던 적은 없다. 어떤 것을 인종차별이라 규정하는지 모르겠다. 가끔 나를 "China(치나, 중국 여자)"라고 부르는 사람은 있다. 나는 그것을 나를 기분 나쁘게 하려는 의도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내가 백인이나 서양 사람을 일단 미국인이라고 보는 것처럼 이곳 사람들은 동양인을 대개 중국인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을 다녀보니 중국인은 세계 어느 곳에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인종차별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칠레에서는 먼저 출입문을 열었던 사람이 뒤에 오는 사람을 기다려주는 일은 흔하다. 한국에서도 자주 겪었지만 이곳에서는 거의 자동적으로 하는 것 같다. 그것이 예의라는 개념이 없이 당연하게 한다. 아이를 배려해 주는 모습은 특히 좋았다. 비행기를 탈 때 아이를 동반하면 우선적으로 탑승시켜 주기도 했다. 지인에게 물어보니 유럽이나 남미의 다른 국가에서도 자주 그렇다고 한다. 심지어 아이를 동반했을 때 주는 혜택을 받기 위해 돈을 받고 아이를 빌려(?) 주는 일이 일어난다고도 했다.


나는 이렇게 사소한 것들이 좋다. 사소한 미소, 친절, 배려, 다정함을 사랑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칠레 사람들은 많이 가지고 있다. 칠레 사람들은 나에게 자주 웃어줘서 좋다. 특히 잘생긴 남자가 웃어주면 더 좋다. 불행하게도 그런 일은 나에게 자주 일어나지 않았다. 집에서 거의 생활하는 나는 타인의 미소를 경험하기 힘들다. 그래서 밖에 나갔다 오면 기분이 좋아진다.


오늘 날씨가 흐려서 외출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는데 이 글을 쓰다 보니 누군가의 미소를 찾으러 가고 싶어졌다. 그들이 알게 모르게 나에게 흘린 친절들을 하나하나 주워오고 싶다. 칠레 사람들아! 딱 기다려요. 내가 이따 나갈게요.


매거진의 이전글 몸은 칠레에, 마음은 한국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