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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시작하는 마음 May 15. 2024

그리운 선생님께

스승의 날 편지

선생님, 이번 스승의 날은 금방 돌아온 것 같아요. 아마 한국에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그렇게 느꼈나 봐요. 도망치듯 떠났던 한국을 다시 돌아가려니 아쉽고 섭섭해요. 한국을 늘 그리워했지만 한국에 있는 무엇을 그리워했는지 잘 모르겠어요.


요즘 저는 잠을 잘 자요. 직장에 다닐 때는 주말에 누워 있는 시간은 많았지만 불안과 걱정으로 뒤척였어요. 항상 잠이 부족했어요. 우울한 상태로 침대에 누워있었어요. 이곳에서는 잠이 오면 그냥 자요. 낮에도 자고 밤에도 자요. 이제는 잠을 자고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요. 충전했다고 생각해요.


가끔은 한국에 살았던 저를 떠올려요. 제 머릿속에 있는 화면에 저를 띄워놓고 멀리서 관찰해요. 화면 속에 있는 저를 보며 조급했구나, 안쓰럽구나, 하고 생각할 때도 있어요. 그렇게 살았던 저를 후회하지 않아요. 그때는 다르게 사는 법을 알지 못했으니까요. 지금 이렇게 살게 될 때까지 그 시간이 분명히 필요했다고 생각해요. 


이곳에 살면서 저에 대한 정보가 제법 쌓였어요. 저는 사소한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사소한 농담, 도움, 친절에 마음이 환해지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무심코 던진 사소한 말 한마디, 성의 없는 행동에 마음이 무너져요. 제가 이런 사람인 줄 일찍 알았더라면 제가 저를 더 기쁘게 해 주고 덜 슬프게 살았을 텐데 좀 아쉬워요. 어제는 한국인 식당에서 짜장면 한 그릇을 먹고 행복해졌어요.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기쁨들을 발견하는 능력이 길러진 것 같아요.


한국에 가서 바빠질 것을 생각하면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두려워져요. 바쁘면 제가 어떤 사람이 되는지 아니까요. 이제는 도망칠 곳이 없으니 한국에 가서 제게 주어진 모든 일들을 하나씩 해결해 가야겠죠. 끝내 해결하지 못한 마음의 숙제도 다시 꺼내보려고요. 


곧 선생님을 직접 뵐 수 있어서 기뻐요. 제 몫의 밥을 제 힘으로 버는 일은 기대가 되고요. 직장에 안 다녀서 좋았는데 밥벌이를 못하는 것은 힘들었어요. 돈을 벌지 않는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는데 괜히 위축되곤 해요. 그런 일로 눈치를 보는 저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요. 스스로 당당해지기 위해서라도 직업을 갖고 일을 열심히 해야겠어요. 제 일이 다시 소중해졌어요.


이곳 생활을 잘 정리하고 편안하고 안정된 모습으로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요. 아직까지 저는 행복한 순간에도 다가올 불행을 걱정하지만 얼른 알아차리고 '호흡'으로 돌아올게요. 불행을 줍고 다니지 않고 제 주변에 있는 사소한 행복들을 찾아볼게요. 


저에게 꼭 필요한 배움을 선물해 주신 선생님께 늘 감사드립니다. 곧 제가 주문한 택배가 선생님께 도착할 거예요. 스승의 날이 있어서, 선생님께 약소하지만 제 마음을 표현할 기회가 있어서 기뻐요. 항상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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