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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시작하는 마음 Jun 06. 2024

언제 밥 한 번 먹자

내가 싫어하는 말

나는 빈말을 싫어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싫어하는 말은 '언제 밥 한 번 먹자'는 말이다. 그런 말을 들으면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저 사람이 밥을 사면 나는 무엇을 사야 될까, 커피를 살까, 선물을 준비할까. 과거의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지금의 나는 다르다. 나는 저 사람과 밥을 먹을 일이 없겠구나, 하고 생각한다. 그 말이 그냥 하는 말이라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나는 빈말을 하지 않는 편이다. 누군가가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와도 내 눈에 예뻐 보이지 않으면 애써 칭찬하지 않는다.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빈말을 하고 나면 남을 속인 것 같은 이상한 죄책감을 느낀다. 솔직하고 진심을 담은 말을 좋아한다. 나도 그런 말을 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밥을 먹자고 말했다면 조만간 약속을 잡는다. 언제 밥 한 번 먹자는 말은 쓰지 않고 당신과 밥을 먹고 싶은데 언제 시간이 되는지 묻는다. 사람들이 나에게도 그렇게 말해주면 좋겠다.


내가 곧 한국으로 간다는 것을 아는 지인들이 연락을 해온다. 언제 밥이나 먹자고. 어떤 지인은 여러 사람을 초대하는 자리에 우리 가족을 끼워 넣는 방식으로 밥을 먹자고 한다. 다른 약속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나는 거절했다. 성의가 없어 보였다. 또 다른 지인은 밥을 먹자는 말을 하고 몇 달이 지나서야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다. 나는 아주 오래 기다렸다. 오늘 어떤 지인은 나에게 내일 뭐하는지 묻고 밥을 먹자고 했다. 나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언제 밥 한 번 먹자.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임에도 내 귀에는 자꾸 거슬린다. 왜 책임지지 못하는 말을 하는 걸까. 자주 궁금해진다. 그 말을 들으면 마음속으로 '우리 언제 밥 먹어요?'라고 묻고 싶다. 그 사람을 당황시키고 싶다. 나한테는 빈말 같은 거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꾹 참느라 힘들다. 


나는 오늘 하루 종일 그 말에 대해 생각했다. 여러 사람을 초대하는 자리에 우리를 끼워 넣은 지인이 우리가 초대에 응하지 않았다고 서운하다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남의 호의를 거절한 건가'하는 생각에 잠시 마음이 불편했지만 이내 마음을 바꿨다. 어떤 사람의 말이 애매할 때는 행동을 보면 된다. 그는 처음에 하교하는 나의 아이들에게 놀러 오라는 말만 했고 나와 남편에게 정식으로 초대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초대하기로 한 날의 하루 전에 전화해서 오라고 했다. 우리는 다른 계획이 있었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불편하게 밥을 먹고 싶지 않았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밥 먹자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의 '짜증 버튼'이 눌러질 것 같아서다. 사람들이 자주 쓰는 그 말을 나는 성의가 없다는 이유로 기분 나빠할 것이다. 그냥 흘려들으면 되는데 불편한 감정을 표현할 것 같다. 그러다 까탈스럽고 예민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것 같다.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덤빈다고 할 수도 있겠다. 내가 밥에 진심이라서 그런 걸까.


언제 한 번 봐요, 언제 밥이나 먹어요, 언제 커피 마셔요. 이런 말을 했던 사람이 실제로 나와 만나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신 적은 거의 없다. 앞으로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이제 믿고 거르기로 했다. 관계를 더 이어가고 싶지 않게 만드는 말이다. 부담 없이 나도 그 말을 가볍게 넘기기로 했다. 나이가 드니 인간관계가 점점 간결해진다.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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