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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시작하는 마음 Jul 22. 2024

반갑지 않은 손님

나도 반갑지 않은 손님일 수 있어

주말 내내 나는 화가 나 있었다. 괜히 짜증이 나고 무언가 손해 보는 느낌이었다. 반갑지 않은 손님이 집에 찾아와서다. 그것도 두 번이나. 내가 사는 아파트 바로 옆에 새롭게 지어진 도서관이 있다. 남편의 조카, 시누이의 대학생 아들이 그곳에서 공부를 하다 딱 점심 식사 시간에 맞춰 나의 아이들에게 전화를 했다. 나는 얼른 눈치를 채고 조카에게 집으로 밥을 먹으러 오라고 했다. 한 번은 그렇게 해주고 싶었다.


나는 집으로 누군가를 초대하는 일이 어렵다. 손님이 집에 적당히 머물다 가주면 좋겠다. 그가 집에서 머무는 시간 동안 나의 소중한 시간이 사라져 버린다. 남편이 주말에만 집에 있는데 가족끼리 오붓하게 보내고 싶은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조카는 내가 챙겨주는 과일을 먹고 커피까지 마시며 오래 머물다 갔다. 나는 쉬지 못했다. 


나의 시누이는 조카에게 전화를 했다. 조카가 나의 집에서 밥을 먹었다고 하자 시누이는 조카를 통해 나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이것은 대리 사과인가. 나에게 직접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인가 싶어 화가 났다. 더운 여름에 남의 식구를 집에서 밥을 먹이는 일은 단순히 숟가락을 하나 더 놓는 일이 아니다. 그 사람의 취향과 건강 상태까지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일이다. 내 조카는 어릴 때 백혈병을 앓았었다. 음식에 특히 신경이 쓰인다. 


며칠 전에 시누이가 우리 가족에게 비싼 밥을 산 적이 있고 나도 조카에게 한 번 정도는 밥을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토요일에 왔던 조카가 일요일에도 집에 왔다. 주말에 한 번 라면을 먹는데 하필 그 때와서 나는 당황했다. 조카에게 라면을 주는 것이 나는 미안했다. 남편은 괜찮다며 나를 설득했다. 서로 옥신각신하다 조카에게 라면을 주었다. 오늘도 역시 시누이는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점심에 조카에게 밥을 먹이고 보냈는데 자기 직전까지 나는 계속 날카로워져 있었다. 어떻게 자기 자식의 밥을 챙겨 준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있지. 하는 생각에 나는 화가 났다. 나는 왜 그렇게 고맙다는 말이 듣고 싶은 걸까. 나의 고생을 알아주고 표현하지 않는 사람에게 나는 늘 이렇게 서운함을 느낀다. 고생했어, 이 말이면 나는 충분한데. 무례함과 상식의 기준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정작 나에게 서운함을 준 사람은 내 마음을 모른다.


남편에게 나의 마음을 충분히 이야기했지만 그것으로는 해소가 되지 않았다. 자꾸 생각나고 또 생각이 났다. 도대체 나는 왜 이러는 걸까. 적당히 하고 넘어갈 수 없을까. 매번 이렇게 힘들어도 괜찮을까. 관계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 나를 압도했다. 타인에게 준 것은 잊어버리라고 하는데 기억이 나는데 어떻게 잊어버리라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준 것만 기억하고 받은 것은 잘 잊어버리는 사람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이 글을 쓰면서 스쳐갔다.


내가 배은망덕한 사람일 수 있구나.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 모른척하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여기까지 오는데 다른 사람의 도움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나 혼자 잘나서 지금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닐 거다. 나도 고마운 마음을 자주 잊으면서 괜한 시누이 탓만 했다. 물론 시누이의 행동을 이해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나도 가끔은 내가 싫어하는 무례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는 것이 부끄럽다.


조심해야겠다. 내가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해서 항상 옳고 친절한 행동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너무 자만하고 오만했다.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지?' 보다는 '사람이니까 그렇지' 하는 것이 내 정신 건강에 더 이로울 것 같다. 


사진: Pixabay Erick Palacio님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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