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도 괜찮아

2024. 3. 6.

칠레는 아직 여름이다. 내 기억에는 4월까지 더웠던 것 같다. 해가 지면 선선하다. 밤에 잘 때, 아침에 일어날 때 쾌적하다. 이것이 칠레의 가장 큰 매력이다. 여름에는 맛있는 과일이 많아진다. 지금은 나오지 않지만 칠레의 체리는 가격이 싸고 달다. 여행을 다녀오니 체리는 이제 시장에서 볼 수가 없다. 내 인생 마지막 체리였는데 아쉽다. 대신 수박과 복숭아가 맛있다.


평소 과일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곳에 와서는 예전보다 더 먹는 편이다. 앞으로 못 먹을 것이고 한국에서 그리워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먹을 수가 없다. 남편은 수박을 끌어안고 산다. 식후 수박, 1일 3 수박이다. 남편은 과일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더위를 잘 견디지 못한다. 냉장고에서 꺼낸 시원한 수박으로 더위를 달랜다. 덥긴 하지만 에어컨이 필요하지는 않다. 집에 있는 선풍기 하나로 잘 버티고 있다.


추위를 타는 나에게는 약간 서늘한 아침에 이 글을 쓰고 있다. 아이들을 통학차에 태우고 나니 삶의 질이 급격하게 올라갔다. 청소를 빨리 끝낼 필요가 없고 외출도 자유로워졌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외출을 하지는 않는다. 이틀째 집에서만 지냈다. 오늘은 오랜만에 남편과 골프장에 갈 것이다. 이렇게라도 나를 집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여행이 끝나고 아직 여독이 남아 있는데 나는 다시 여행을 떠나고 싶다. 여행이 싫다고 할 때는 언제고 나는 청개구리 같다.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확실히 모르겠다. 다만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은 좋아한다는 것은 안다. 내가 나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어떻게 나를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시간에 쫓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집안일을 할 때 특히 그렇다. 바쁘지 않은데 나를 재촉할 필요가 없다. 내가 편한 시간에 하나씩 하나씩 하려고 한다.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바로 하던 청소를 오늘은 하지 않았다.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을 싸느라 정신이 없었던 나를 쉬게 해주고 싶었다. 남편과 잠깐 커피 한 잔을 하면서 쉬었다. 지금은 그래도 되니까. 여기서는 이래도 되니까.


곧 외출을 한다고 생각하니 설렌다. 칠레의 햇살을 피부로 느끼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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