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또 자고

2024. 3. 21.

어제는 잠을 많이 잤다.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바로 잠을 잤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한 후 배가 아팠다. 기운이 없어진 나는 초저녁부터 또 잤다. 요즘 몸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커피를 끊은 지 3일째다. 오늘 아침에 죽을 끓였지만 나는 먹지 않았다. 음식을 먹는 것이 두렵다.


아프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마음속에 늘 품고 살았다. 내가 아프면 남편이 힘들어지니까, 여행 중에는 아프면 안 되니까, 평일에는 할 일이 많으니까 등등 내가 아프면 안 되는 이유는 많다. 마음 놓고 아플 수 있는 날이 올까. 또 배가 아플까 봐 글을 쓰는 지금도 마음이 편치 않다.


우울한 건지 아니면 기운이 없는 것인지 분간이 안 되는 날이 계속되고 있다. 자꾸 누워있고 싶다. 아파도 잘 먹었는데 식욕이 없어진 것을 보니 배 아픈 게 무척 힘들었던 모양이다. 굶을 수 있을 때까지 굶어야겠다.


시간이 빠르게 가는 것 같기도 하고 더디게 가는 것 같기도 하다.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는 할 게 별로 없다. 집에 있는 가구와 가전제품만 정리하면 된다. 한국에 가면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때를 대비해서 지금 충분히 아프고 쉬어야 될까.


아침에 학교 준비물을 두고 서로 신경전을 벌이는 아이들을 보며 한국에 가고 싶어졌다. 한국에서는 다이소에 가면 필요한 물건들을 금방 살 수 있으니까, 아니면 지인에게 잠깐 빌릴 수 있으니까. 칠판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둘째의 시력 검사를 위해 안과에 가야 한다. 병원 예약이 쉽지 않다. 또 한국에 가고 싶다.


어떤 일이든 큰 어려움 없이 해결할 수 있는 곳에 살다가 사소한 불편함도 해결하기 어려운 곳에서 살고 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마주할 때마다 스트레스가 쌓인다. 칠레의 행정, 의료 시스템에 화가 난다. 이곳에 적응했다고 해도 모든 일이 얼른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오늘도 자고, 또 자야겠다.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만이라도 마음 놓고 아파할 것이다. 손가락으로 키보드만 두드렸는데도 벌써 기운이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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