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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시작하는 마음 Apr 23. 2024

한국으로 가는 날을 기다리며

2024. 4. 22.

곧 한국으로 간다고 생각하니 모든 게 아쉽다. 특히 어제 같은 주말이 그렇다. 한국에서는 주말도 쉴 틈이 없었다. 밀렸던 빨래와 청소하기, 일주일치 장 보기, 부모님 댁 방문하기 등 평일을 잘 보내기 위한 준비로 바빴다. 


칠레에서는 주말에 쉬기만 해도 된다. 외식을 하지 않기 때문에 세 번의 밥상을 차려야 하는 것만 빼면 할 일이 없다. 마트는 평일에 언제든 갈 수 있고, 따로 쇼핑할 일도 없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한국에서 살던 집보다 좁아서 청소에 대한 부담이 줄었다. 


나는 요즘 한국에 가면 잠을 못 잘 걸 알아서 그런지 몸에서 자꾸 자라는 신호를 보낸다. 주말에 점심만 먹고 나면 졸음이 쏟아진다. 정신없이 자고 일어나면 어느새 저녁 준비를 할 시간이 된다. 지난 주말에도 이틀간 꼬박꼬박 낮잠을 잤다.


남편도 나처럼 빨리 한국에 가고 싶어 한다. 어제는 막상 한국에 가서 바빠질 생각을 하니까 좀 아쉬워진다고 했다. 나도 그렇다. 한국에서도 칠레에서 살던 것처럼 살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 


타국에서 살면 무엇이 좋을까. 나는 뭐가 좋아서 이렇게 아쉬워할까. 돈이 벌지 않아도 되는 것, 관계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좋았다. 직장에 가지 않으니 시간이 많아져서 책을 많이 읽고 글도 쓸 수 있게 되었다. 나와 잘 지내는 기술을 터득했다. 딸, 며느리라는 역할만 벗어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적어도 여기 있는 동안은 시어머니도 나에게 며느리 역할을 잘하기를 기대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 나는 자주 숨이 찼다. 학교 업무, 육아, 집안 행사까지 챙기고 나면 나로 돌아오기 힘들었다. 나와 잘 지내지 못했다. 나의 육아는 내 마음에 들지 않았고 학교 업무는 열심히 해도 만족스럽지 않았으며 집안 행사는 꼬박꼬박 챙겨도 모두에게 당연했다.


한국에 가면 나는 다시 그 일들을 잘 해낼 수 있을까. 당장 들어갈 집이 없어 이주일 동안은 시댁에 머물러야 한다. 오랜만에 만난 시댁 식구가 잠깐은 반갑겠지만 그들의 하는 말과 행동에 나는 괜찮을 수 있을까. 당연히 나는 괜찮지 않겠지만 그 불편한 마음을 잘 해결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집에 조용히 앉아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건강상의 문제로 커피는 이제 내 옆에 없다. 커피는 없지만 고요한 이 시간을 나는 더 지극하게 사랑해야겠다. 점심을 먹고 나면 뜨거운 햇살을 뚫고 쇼핑몰에 가서 아이들의 학교 준비물을 살 것이다. 뜨거워도 불쾌하지 않은 저 햇빛을 나는 두고두고 그리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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