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다시 시작하는 마음
May 01. 2024
노동절에는 가사, 돌봄 노동도 쉬고 싶어
2024. 5. 1.
칠레에서 두 번째 노동절을 맞았다. 칠레는 법률에 명시되어 있는 노동자의 권리가 잘 지켜지는 편이다. 노동절에 노동자는 반드시 쉬어야 한다. 마트도 영업을 하지 않는다. 나는 어제저녁에 급하게 쌀을 사러 마트에 다녀왔다. 이곳에서 한국의 노동절을 떠올려보니 화창하고 조금 더웠던 날씨가 생각난다. 나는 공무원이라 노동절에도 학교에 갔다. 나도 노동자인데 왜 일하러 가, 하며 투덜거리면서.
칠레가 확실히 가을이 되었다. 바람이 자주 불고 햇살이 예전만큼 뜨겁지 않다. 흐린 날이 이어지고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건조기. 빨래가 잘 마르지 않는다. 이런 날씨가 11월 정도까지 계속된다. 작년 일기를 살펴보니 나는 작년에 꾸준하게 밖으로 나가서 운동이나 산책을 해야 한다고 적어 놓았다. 날씨가 흐린 날이 많으니 내가 우울해질까 봐 걱정이 되었던 것 같다.
요즘은 아침 식사로 과일과 채소를 갈아서 마시고 있다. 아이들에게는 밥과 반찬을 준다. 음료 한 잔으로 아침을 때우는 것이 간단하게 느껴지지만 실상은 다르다. 나는 아침을 두 번 차리는 것과 같다. 아이들용 한식 밥상과 나와 남편을 위한 주스까지 챙겨야 한다. 남편이 아침을 먹지 않으니 국을 끓이는 부담은 줄었지만 아이들용 반찬을 별도로 만들어야 해서 일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간단하게 주스, 간단하게 볶음밥을 달라고 누군가 나에게 주문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세상에 간단한 볶음밥이 어디 있냐고. 요리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의 무지에서 나온 말이라고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음식 앞에 '간단한'이라는 형용사는 누가 붙였는지 따지고 싶다.
간단한 주스를 주문한 나의 남편을 험담하는 것은 아니다. 남편은 직접 주스용 재료인 사과, 바나나, 당근, 토마토를 다듬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집 주방이 좁아서 나와 같이 움직이면 동선이 꼬여 겹친다. 내가 하는 것이 둘이 하는 것보다 효율적이어서 지금은 내가 하고 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계속 적는 이유는 오늘이 노동절이기 때문이다. 노동절에는 가사와 돌봄 노동도 쉬게 해 주면 좋겠다. '노동'이라는 단어 안에는 가사와 돌봄 노동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급여가 없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노동이라고 보지 않기 때문에 급여를 주지 않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사회적으로 노동이라고 인정받지 못하고 급여도 받지 못하는 그 노동을 대부분의 여성이 담당하고 있다. 집집마다 다르겠지만 오랜 시간 동안 그것은 여성의 몫이었다. 열심히 해도 티가 안 나고 좀 안 하면 티가 확 나는 그 일. 가전제품이 발달하면서 다 기계가 하지 않느냐는 핀잔을 들을 수 있는 그 일. 끝끝내 사람의 손이 반드시 필요한 그 일이 존중받는 날이 오면 좋겠다.
노동절이라서 그것에 대해 생각해 봤다. 집안일이 귀찮아서 쓴 글은 아니다. 노동이 무엇일까, 고민하며 적은 글이니 부디 남성들이 분연히 자리에서 일어나 언성을 높이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