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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시작하는 마음 May 12. 2024

짜장면 한 그릇으로 행복해질 수 있어

2024. 5. 11.

주말이다. 일을 미루지 않고 바로 처리하는 남편 덕분에 집에 있는 가전, 가구, 생활용품을 팔았다. 나는 언제 사진을 찍어서 한인 단체채팅방에 글을 올리지, 하며 걱정만 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후다닥 사진을 찍고 구입 가격을 조사했다. 나는 판매 가격만 결정했다. 남편의 급한 성격이 나를 재촉할 때도 있지만 이렇게 일을 얼른 마무리하도록 도움을 주기도 한다. 


아직 팔지 못한 물건들이 있지만 시간이 있으니 괜찮다. 가격을 낮추면 금방 팔릴 것이다.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애쓰기보다 빨리 정리하기 위해 물건을 싸게 내놓았다. 지인들이 일부 물건들을 사줘서 걱정을 덜었다. 판매글을 올리고 나니 금방 메시지 알림음이 울렸다. 오랜만에 내 휴대폰의 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내 생일을 맞아 외식을 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짜장면과 짬뽕을 먹었다. 숨도 안 쉬고 먹었다. 칠레에서 가격 대비 큰 만족을 주는 외식 메뉴는 중국 음식이다. 아이들이 커서 이제는 한 그릇을 먹는다. 각자 자기 몫의 짜장면과 짬뽕을 먹을 수 있다. 


지인이 운영하는 빵집에 가서 최근 맛을 들인 팥도넛을 사 왔다. 지인의 가게가 바쁜 걸 확인하니 기분이 좋았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사람을 만나고 오니 행복했다. 집에 와서 남편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 참 행복하다고 말했다. 


나는 짜장면 한 그릇으로 행복해질 수 있지만 사소한 말 한마디로 기분이 우울해진다. 나는 사소한 것에 많은 영향을 받는 예민한 사람이다. 사소한 친절을 좋아하고 잔정에 목말라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조금 일찍 알았더라면 내가 나를 더 기쁘게 해 줄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슬픈 이유를 잘 알 수 있었을 텐데. 그 슬픔에 붙들리지 않고 덜 우울했을 텐데 참 아쉽다.


집에 있는 물건이 하나둘씩 팔리는 것을 보던 남편이 이제 정말 한국에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한국을 떠나 칠레로 올 때는 이런 아쉬움과 섭섭함을 느끼지 않았다. 도망치듯 왔다. 나를 낳아 길러준 부모로부터 벗어나고 싶었고 내 몫의 밥을 벌게 해 준 학교가 지긋지긋했다. 다른 곳에 가서 다른 모습으로 살고 싶었다. 


칠레를 떠나려는데 이런 시원 섭섭함이 있어서 다행이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도망치고 싶지 않았으니까. 이곳에서는 행복을 느껴보았고 내 몸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아보았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과는 만나지 않았고 사람들에게 시달리지 않았다. 내 몫의 밥은 내가 벌지 못했지만 꿋꿋하게 잘 먹고 잘 지냈다. 


칠레에 와서 몸으로 느꼈던 문장이 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칠레에서는 많은 일이 생각했던 대로, 계획했던 대로 되지 않았다. 변수는 일상 곳곳에 있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고 마음을 놓으면 안 된다. 늘 긴장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해외살이의 가장 큰 어려움이다. 


남은 날까지 행복한 마음으로 지내고 싶다. 지인들에게 감사 인사를 충분히 하고 한국의 지인들에게 마음을 표현할 선물을 준비할 것이다. 모든 것이 잘 마무리되면 좋겠다.


두둑해진 배가 불편하지만 저녁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내 몫의 일을 하러 주방에 가서 쌀을 씻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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