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5. 18.
주말인데 바빴다. 아이의 학교 준비물을 사러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한 번은 걸어갔고 한 번은 자동차로 이동했다. 나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노는데 진심이다. 학교에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주제를 정하고 그에 맞는 옷을 입고 학교에 가는 행사를 연다. 아이들의 학교 준비물이 학용품이 아니라 옷이나 파티용품이다. 칠레의 공산품은 비싸고 필요한 물건을 어디에서 사는지 몰라서 매번 준비물 챙기는 일이 가장 고되다.
하필 둘째 아이는 지금 구하기 힘든 핼러윈 의상을 준비해야 한다. 가는 곳마다 10월에나 물건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답을 들었다. 인터넷에서 팔긴 하는데 2천 원짜리 소품 하나 사는데 배송비가 4천 원이다. 한국에서는 다이소만 가면 다 해결될 일인데 하루 내내 이것에만 매달려 있는 있는 것에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 아이는 속도 모르고 인형을 사달라, 모자도 사달라고 한다. 아이에게 엄마랑 아빠가 준비물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우리 형편에 맞게 최소한의 소품만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아이의 철없음이 부럽기도 하다. 나는 이렇게 부모에게 무언가를 간절하게 또는 편하게 요구하지 못했다.
행사가 있는 날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 방법까지 고려해 보았지만 마음을 접었다. 아이들이 평소에도 하기 싫거나 귀찮은 일이 생기면 학교에 가지 않는 방법을 선택지로 넣을까 봐 걱정이 되어서다. 돈이 들더라도 성실한 태도를 갖게 해주고 싶었다. 무엇이 부모로서 옳은 선택인지 매 순간 고민한다. 아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만큼은 해주고 안 되는 것은 안된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다.
모처럼 시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시어머니는 통화 마지막에 나에게 한국에 오면 필요한 것이 있느냐, 있으면 미리 준비해 놓겠다고 하셨다. 나는 뭉클해졌다. 나는 평소에 이런 말을 듣고 싶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도와주겠다는 말은 나를 더 힘을 내게 만든다. 나는 평소에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 도움을 받은 것처럼 든든해진다. 통화가 끝나고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자기는 좋겠다! 이런 부모님이 있어서."
도움을 받고 사랑을 받고 싶었던 사람에게 충분히 받지 못했던 나는 항상 이런 것들에 목마르다. 그냥 지나가는 말 한마디면 되는데. 나에게 도와주겠다고 말해도 나는 도움을 요구하지 않았을 텐데. 왜 나의 부모님은 나에게 항상 도와달라고만 하고 나를 도와주지 않았을까. 그저 사소한 마음 하나면 되는 거였는데.
둘째 아이의 준비물이 구해지지 않아 짜증스러운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다. 낮잠을 자면서도 꿈에서 무언가를 찾아다녔다. 부모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데도 내가 그 일을 귀찮아하는 것 같아 화가 났다. 나는 왜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지 못하는 걸까, 하는 생각에 괴로웠다.
생각이 자꾸 과거로 돌아가니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 같다. 나는 과거에 붙들려 있다.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내면 아이'가 나타나는 것을 알아차려야겠다. 그래야 내 마음이 더 자랄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은 나의 내면 아이가 나의 내면을 활개치고 다닌 것 같다. 그 아이를 즉각 불러들여 다시 제자리로 데려다 놓고 나는 현재의 이야기를 써봐야겠다. 그래야 나는 한 발씩 더 나아질 수 있다.
사진: Pixabay, HANSUAN FABREGAS님의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