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경력자의 독립 2년차 보고서: 맥락이 나의 유일한 무기였다
2023년 11월 1일 수요일, 메시지하우스를 세우고 독립 첫날 아침 8시.
나는 습관적으로 캘린다를 열었다. 텅 비어 있었다.
지난 10년간 매일 아침 8시면 최소 3개의 회의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이제는 아무것도 없었다. 9시 전략 회의도, 10시 클라이언트 미팅도, 오후 3시 팀 브리핑도 없었다.
커피를 마시며 30분 동안 멍하니 있었다. “나느 지금 뭘 해야 하지?”
자유로운 건지, 버려진 건지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지사장 시절, 내 하루는 평균 6개의 회의로 채워졌다. 100여명의 조직을 운영할 때, 나는 하루 평균 50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사람들이 내 결정을 기다렸고, 내 승인이 필요했으며, 내 의견이 조직을 움직였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았다. 알림이 울려도 일어날 이유가 없었다. 나는 갑자기 엔진 없는 자동차가 된 기분이었다. 20년간 100마력 엔진(조직)을 달고 달렸는데, 이제는 내 두 발로 굴러야 했다.
당신도 그런 적 있지 않은가? 월요일 아침, 달력을 열었는데, 아무 일정도 없는 순간. 그때 당신은 무엇을 느꼈는가?
독립 첫 주, 나는 첫 번째 제안서 요청을 받았다. 게임 업계 스타트업 CEO가 "브랜드 메시지 좀 봐주세요"라고 했다. 나는 자신 있게 답했다. "1주일이면 충분합니다." 지사장 시절엔 늘 그랬으니까.
하지만 메시지하우스를 독립한 첫 월요일, 레버리지는 사라졌다. 전화를 걸어 "이 제안서 오늘 오후까지 초안 부탁해"라고 할 팀장도 없고, "이 고객사 히스토리 좀 정리해줄래?"라고 할 주니어도 없었다. 모든 것을 내가 직접 해야 했다. 아니, '직접 한다'는 표현도 정확하지 않다.
밤 11시, 제안서 슬라이드 15페이지를 완성했다. 아니, '완성'이라고 하기엔 조금 민망했던 기억이 난다. 폰트가 제멋대로였고, 레이아웃이 들쭉날쭉했다.
"이중대, 너는 20년 동안 뭘 한 거야?" 스스로에게 물었다.
하지만 새벽 2시, 제안서를 보내며 깨달았다. 조직의 레버리지가 사라지면, 내가 만들어야 할 것은 전문성의 레버리지다. 이것이 첫 번째 학습이었다.
무엇을 할 것인지조차 내가 결정해야 했다. 지사장 시절에는 주간회의에서 우선순위가 정해졌고, 본사에서 분기 목표가 내려왔고, 팀장들이 프로젝트 리스트를 올렸다. 하지만 독립 후에는 아무도 나에게 우선순위를 제시하지 않는다.
지사장 시절, 나의 전형적인 하루는 이런 식으로 소비되었다. 오전 9시 주간회의에서 각 팀의 프로젝트 현황을 점검한다. 10시에는 신규 고객사 미팅, 11시 30분에는 전략팀과 제안서 리뷰, 오후 1시에는 본사와 화상회의, 3시에는 팀장들과 인사 이슈 논의, 5시에는 위기관리 프로젝트 진행 상황 보고. 하루 8시간 중 6시간이 회의였다. 나는 이것을 '조직을 운영하는 일'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100명 조직은 회의를 통해 정렬되고, 조율되고, 실행된다.
하지만 독립 2년차인 지금, 나의 하루는 완전히 다르다. 오전 9시, 나는 노트를 펼치고 다섯 가지 질문에 답한다.
오늘 누구에게 연락할 것인가?
어떤 메시지를 보낼 것인가?
어떤 제안을 준비할 것인가?
어떤 프로젝트를 거절할 것인가?
다음 주에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는 데 꽤 시간이 걸린다. 지사장 시절 같으면 10분이면 끝났을 일이다. 하지만 독립 기업가에게 이 시간은 하루를 설계하는 시간이다. 회의가 내 하루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하루를 설계한다.
독립 3개월차, 전 동료를 강남역 카페에서 만났다. "대표님은 이제 뭐 하세요?" 그의 질문에 나는 5분 동안 설명했다. 메시징 전략가로서 브랜드 메시지, 임원 메시지, 위기 커뮤니케이션을 설계한다고. 그가 물었다. "그럼 바쁘시겠네요?"
나는 잠시 생각했다. "바쁘다기보다는... 내가 시간을 설계해." 지사장 시절엔 하루 12시간을 일했지만, 나만의 시간이 아니었다. 회의 스케줄이 내 하루를 결정했다. 지금도 하루 8시간을 넘기며 일하지만, 매 시간이 내 결정이다. 이것이 두 번째 학습이었다. 경영진의 일은 조직을 조율하는 것이고, 독립 기업가의 일은 가치를 설계하는 것이다.
지사장 시절의 결정과 독립 기업가의 결정은 완전히 다르다.
지사장 시절, 나는 '조직의 결정'을 내렸다.
이 프로젝트 제안에는 어떤 팀을 투입할 것인가?
이 고객사 제안에 얼마의 예산을 배정할 것인가?
이번 프로젝트의 실행 기간의 투입 인력은?
이것은 '자원 배치의 결정'이었다. 나에게는 100명의 조직이라는 자원이 있었고, 그 자원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가 나의 주된 역할이었다.
하지만 독립 기업가의 결정은 다르다. 자원 배치가 아니라 '가치 창출의 결정'이다.
이 고객의 문제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나의 20년 경험 중 어떤 것을 이 문제에 적용할 것인가?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 것인가?
이 제안이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만들어낼 것인가?
이것은 조직의 레버리지가 아니라, 내 전문성의 레버리지를 활용하는 결정이다. 그리고 이 결정은 조직이 없어도 작동한다. 아니, 오히려 조직이 없기 때문에 더 빠르고 정교하게 작동한다.
조직의 레버리지가 사라지면,
남는 건 전문성의 레버리지뿐이다.
그리고 그 전문성의 가치는
문제 해결로 증명된다.
독립 2년차를 지나며 내가 확신하게 된 것이 하나 있다.
시니어 경영진 출신의 가장 큰 강점은 '맥락 판단력'이다. 20년 동안 나는 수백 개의 프로젝트를 경험했고, 수십 번의 위기를 관리했고, 수백 명의 클라이언트와 일했다. 이 경험은 단순히 '나는 이런 일을 했다'는 이력이 아니라, '이 상황에서는 이것이 작동한다/작동하지 않는다'는 패턴 인식 능력으로 쌓였다.
수개월 전, 한 스타트업 대표가 나에게 위기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의뢰했다. 고객 데이터 유출 사고였다. 나는 AI에게 물었다. "B2B SaaS 스타트업, 고객 데이터 유출, 피해 고객 50명, 언론 보도 전, 48시간 대응." AI는 30분 만에 5단계 실행 플랜을 만들어줬다. 하지만 그 플랜을 검토하며 내가 수정한 것은 단 한 가지였다. "언론 대응 Q&A를 먼저 준비하지 마라. 피해 고객 50명에게 CEO가 직접 전화하라. 그들의 반응을 듣고 나서 언론 메시지를 정리해라." 이것은 AI가 제안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나의 20년 경험은 알고 있다. 위기의 중심에는 항상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의 목소리를 먼저 듣는 것이 모든 전략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AI는 독립 기업가에게 엄청난 무기다. 특히 시니어 경영진 출신에게는 더욱 그렇다.
AI는 내가 20년 동안 쌓아온 경험을 10배 빠르게 작동시키는 엔진이 된다. 제안서 초안, 전략 옵션, 리스크 분석, 실행 플랜. AI는 이 모든 것을 순식간에 만들어낸다. 하지만 AI가 만든 10가지 옵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내 몫이다. 그리고 그 선택의 기준은 '맥락'이다.
이 고객이 지금 무엇을 불안해하는가?
이 시장에서 지금 어떤 타이밍인가?
우리의 제안이 이 조직의 정치적 역학에서 어떻게 작동할 것인가?
이 결정이 6개월 후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 것인가?
이 질문들은 AI가 답할 수 없다. 지사장으로 10년을 일하며 쌓아온 내 경험이 답한다. AI는 속도를 주지만, 판단은 경영진의 몫이다. 그리고 독립 기업가로서 나의 가치는 바로 이 판단력에 있다.
독립 2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
나름 큰 조직을 운영하던 지사장에서 독립 기업가가 되는 전환은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깊은 과정이다. 조직의 레버리지가 사라진 자리에 전문성의 레버리지를 세우는 것, 경영진의 결정 방식을 독립 기업가의 결정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 그리고 AI 시대에 시니어의 강점을 재정의하는 것. 이 모든 것이 2년 동안 내가 배우고 있는 것들이다.
30대 중반, 40대 후반의 시니어 경영진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20년 경험은 조직 안에서만 작동하는가? 아니면 조직 밖에서도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독립은 끝이 아니라 진화다. 그리고 그 진화의 핵심은 조직의 레버리지를 전문성의 레버리지로 전환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 전환을 계속하고 있다.
독립 2년차, 나는 하루 평균 8시간 이상 일하고, 월 3개 프로젝트를 동시에 운영한다.
조직 레버리지 대신 전문성 레버리지를, 자원 배치 결정 대신 가치 창출 결정을, 회의 중심 일과 대신 설계 중심 일과를. 나는 지휘자에서 원맨 밴드가 되었고, 여전히 연주법을 배우고 있다.
"독립은 끝이 아니라 진화다.
조직에서 배운 전략적 사고는 남고,
실행하는 방법만 바뀔 뿐이다."
당신의 독립은 언제 시작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