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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영 Nov 09. 2022

선배의 자격

얼마 전, 회사 블라인드에 한바탕 난리가 났다.


어떤 직원이 같은 부서 몇몇 선배들에 대한 반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았으나 그들이 누구인지는 금세 드러났고, 회사 내에 소문이 퍼져 게시물의 조회수는 폭발하다시피 하였다.


상황은 순식간에 악화되었고, 게시물은 곧 누가 잘했네, 잘못했네를 따지는 댓글들의 싸움터가 되었다. 해당 부서의 분위기가 엉망이 된 것은 당연한 일. 결국 부서장 주도의 회의를 통해, 부서원들이 글을 쓰지 않았다는 인증을 하는 것으로 사태는 일단락되었다는데. 여전히 회사에는 이런저런 뒷말들이 돌고 있다.(참고로 인증은 조작이 가능하다고 한다.)


같은 부서가 아닌지라, 나는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른다. 직접 보지도, 겪지도 않았으면서 주워들은 이야기만으로 잘잘못을 추측하고 싶지도 않다. 솔직히 그리 궁금하지도 않고.


다만, 이 일은 직장 내 나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선배’로서의 그것에 대하여. 나는 후배들에게 제대로 된 선배인지, 혹시 나도 누군가에게는 가해자가 아닌지 하는 것들 말이다.




스스로를 돌이켜봤을 때, 나는 딱히 좋은 선배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나쁜 선배도 아닌 것 같다. 그냥 딱 중간.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사람 정도랄까.


판단의 근거가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최소한 두 가지는 지켰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겠다.


라떼 찾지 않기와 선 넘지 않기.


한마디로, 잘해주지는 못해도 짜증 나게 하지는 않았다는 거다. 그리고 단언컨대, 이것들만 확실히 지켜도 욕먹는 선배는 되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니까. 가장 속 편한 핑계를 포기하고, 자신의 언행에 스스로 필터를 장착하는 셈이니 말이다.


‘나 때’를 찾지 않는 것, 시답잖은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는 건 내가 겪었던 좋은 선배들의 공통분모다.


운이 좋게도, 나는 입사 첫해에 좋은 선배들을 만났다. 내가 회사에 정을 붙일 수 있게 해 준, 본받을 점이 많은 사람들. 그리고 첫 끗발이 개 끗발이라고, 그 후에도 나쁘다 할 만한 선배는 만나지 않았다.(직접적으로 만나지 않았다는 거지, 간접적으로는 많이 만났다.)


좋은 선배들은, 본인의 경험담이 현재에 도움이 된다 싶을 때에만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그런 건 당연히 라떼가 아니라 조언의 영역.


‘라떼’에 해당하는 건 대부분 두 가지 경우다.

첫째, 본인 자랑할 때. 둘째, 본인도 잘 모를 때.


술자리에서 본인의 과거 무용담을 늘어놓는 건 차라리 나은 편이다. 최악인 건, ‘나 땐 내가 다 알아서 했어.’ 식의 무책임한 태도다. 경험상 그런 이들은 후배에게 뭔가를 교육할 역량이 부족하다. 발생한 문제에 대해 마땅한 해답을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도 인정은커녕, 망상에 빠져 ‘나는 다 스스로 했는데, 너희들은 왜 못해?‘ 같은 망발이나 내뱉는다.


혹시라도 뜨끔한 사람이 있다면, 앞으로는 그냥 인정하고 다른 똑똑한 동료라도 붙여줘라. 그게 뭐 별건가.

본인이 인정하지 않아도 상대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러니 쓸데없는 소리 말고 그냥 지갑이나 열어라.


선을 넘지 않는 것, 일정한 수준의 거리감을 유지하는 건 선후배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 중요하다.


사회 초년생 시절, 처음 만났던 후배에게 너무 잘해줬다가 나중에 쓴소리를 해야 할 때 하지 못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그다음부터 나는 선배든 후배든 너무 스스럼없는 관계는 지양하게 되었다.


가족 간이든, 친구 간이든 모든 인간관계에서 선을 지키는 일은 중요한 법인데, 하물며 직장 내에서는 어떠하겠는가. 가족 같은 분위기니 뭐니 헛소리 해도 어쨌든 공은 공이고 사는 사인 것이다.


선은 선배가 넘을 수도, 후배가 넘을 수도 있다. 둘 다 문제가 되는 건 같지만, 아무래도 선배가 넘는 일이 더 많고,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경우가 빈번하다. 아무리 MZ는 다르다지만, 그들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다. 고충처리가 좀 더 빠를 뿐이겠지.


간혹 본인은 신나게 선을 넘나들면서 상대가 조금만 선을 넘을라치면 지랄을 하는 인간들이 있다. 이 글을 읽어도 본인은 전혀 모를 텐데. 최근에 후배들이 먼저 밥이나 술을 먹자고 한 적이 있는지 떠올려 보면 답이

나올 거다. 남 불편하게 만들지 말자.




내가 생각하는, 그리고 지켜가고 있는 선배로서의 모습은 대략 이 정도다. ‘선배’ 소리 듣는 게 부끄럽지 않을 만한, 최소한의 자격 말이다.


너무 ‘드라이’한 측면만 강조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너무 정 없이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차라리 드라이한 것이, 후배들 입에서 또라이 소리 나오는 것보다는 백만 배 낫다. 후자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냥 알아서 하기 바란다.


회사 블라인드에서 벌어진 일은, 나에게도 약간의 충격을 안겨주었다. 사건 자체가 놀랍다기보다는, 가해자로 지목된 이가 나와 비슷한 연차의 직원이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리고 이로 인해 반강제로 깨닫게 된 전제들은 나에게 새로운 경각심을 일깨워 주었다.


이제는 나도 주니어보다는 시니어 그룹에 가깝다는 것. 나 역시 앞으로 언제든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혹시라도 나 또는 나의 동기가 이런 식의 저격을 당하는 날이 오면, 잽싸게 달려가 실드 치는 댓글을 적어 사태를 빨리 종결시켜야겠다고. 좋은 선배가 되는 것보다는 그 편이 훨씬 빠를 것 같기 때문이다. 물론 농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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