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사람.
나는 이런 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한결같은 캐릭터가 나의 최애(最愛)라면 이러한 작자들은 한마디로 극혐(極嫌)이다.
전자, 강한 자에게 약한 것은 각자의 이해관계가 있는 법이니 제 3자의 입장에서 마음대로 재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후자는 다르다. 현대 사회에서 강자가 약자를 ‘반드시’ 억눌러야 하는 경우는 없으니까. 그러니 내가 싫어하는 인간형은 강약약강 중 뒤쪽에 악센트가 찍힌다고 보면 되겠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는,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후자의 자격을 갖춘 사람이 참 많아 보인다. 조금이라도 유리한 위치가 보이면 잽싸게 선점하여 기어코 으스대고 마는 기회주의자들. ‘갑질’이 신조어가 된 이래로 매일같이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으니 내가 특별히 오버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회까지 시선을 넓힐 것도 없다. 우리 주변에는 도저히 모르는 척할 수 없는 갑을 관계가 넘쳐난다. 가정이든 회사든, 동성 간이든 이성 간이든. 사람이 2명 이상 모이면 상대적 강자와 상대적 약자가 생기기 마련이고, 어느새 그들 사이는 가해자와 피해자로 변질돼 버리곤 한다.
혹자는 이것 역시 약육강식이라는 생태계의 법칙에서 기인한 것이기에 마냥 나쁘게 볼 수만은 없다고 할 것이다. 인간도 동물의 한 종(種)이기에. 무슨 주의니 무슨 론이니 하는 허울들을 잔뜩 뒤집어쓰고 있지만, 결국 강자가 약자를 수탈하는 건 본능적인 행동이라는 것이다.
나도 이러한 의견에 일부는 동의한다. 누군가에게는 약한 자를 핍박하는 것이 생존의 방식일지도 모르니. 그러나 이해한다고 해서 갑질의 현장을 보고도 ‘아, 저 사람도 생존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구나.’라며 고개를 끄덕이기는 어렵다. 갑질이 그들의 본능이라면, 꼴 보기 싫은 것 또한 나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많이 산으로 갔는데, 뭐가 어찌 됐든 나는 강자 앞에서 살랑거리고 약자 앞에서 거들먹거리는 인간들을 싫어한다.
그 시작이 언제였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나는 어릴 적부터 그런 놈들과는 결이 맞지 않았다. 학창 시절 내가 가장 멀리했던 친구의 부류 역시, 나와 직접적으로 다투었던 친구가 아니라, 센 녀석들에게는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처럼 굴다가 약한 녀석들에게는 왕처럼 군림하는 놈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간혹 가다 ‘강자’의 자리를 체험할 때면, 혹시라도 내가 내로남불을 저지르고 있지는 않은지 항상 경계한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물론 강자가 돼본 적도 별로 없지만, 약자에게 도움을 주지는 못해도 최소한 센 척은 하지 않았다고 자부한다. 정상적인 지성인이라면 그 정도 언행일치는 실천함이 당연하겠지만.
나아가 요즘, 나이를 먹어가면서는 강자에게 약해지지 않는 것, 더 세게 표현하자면 강자 앞에서 비굴해지지 않는 것에도 관심이 생겼다.
하지만 여기엔 관심이 생겼을 뿐,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는 없다. 강자 앞에 고개 숙이지 않으려면 아쉬운 것이 없어야 하는데, 아직 나는 궁한 일이 천지에 깔려있으니.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모습에 도달하려면 지금부터 20년은 족히 걸릴 것 같다.
고로 당분간은 하던 대로, 약자 앞에서나 똑바로 행동하면서 살아야겠다. 그것 또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