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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영 Oct 31. 2022

마지막의 무게

1월, 어느 추운 겨울날.

군대에서의 마지막 날, 전역일이었다.

 

벌써 10년가량 지난 옛날 일이지만, 자신에게 의미 있던 혹은 강렬했던 몇몇 순간들이 으레 그렇듯 그날의 정경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생생하다.

 

그날은 혹한기 훈련 기간 중의 하루였다. 평소와 달리 중대 생활관은 텅 비어있었고 특별한 용무가 있는 병사나 간부들만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할 뿐이었다. 함께 고생했던 친구들과의 마지막 전우애는 말년휴가를 나가기 전 충분히 나누었기에, 전역증을 받고 이제는 사회로 돌아갈 일만 남아있었다.

 

더블백 동기와 함께 위병소로 향하는 비탈길을 내려오다 고개를 들어 뒤를 돌아보았다. ‘우리 한 바퀴 돌까?’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왠지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그렇게 싫었던 곳인데, 끝이라는 이유로 갑작스레 감상에 젖어 ‘그땐 그랬지’ 하며 위안 삼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는 군생활이 힘들었다. 자대 배치를 받은 지 1주일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 집으로부터 날아온 비보는 남은 군생활을 단 하루도 편하게 보낼 수 없게 만들었다. 매일이 자신과의 싸움이었고, 미칠 듯 그곳을 벗어나고 싶은 충동과 버텨내야 한다는 다짐들로 혼란한 정신을 추스르는 일의 반복이었다.

 

하지만 군대라는 집단에서 나의 민낯을 드러내는 것은 어리석은 짓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나는 그 안에서 철저히 가면을 쓰고 생활했다. 그래서 함께 군생활을 했던 친구들은 지금도 나의 진짜 속내를 전혀 모르고 있다. 군대라는 무대 위에서 처절하게 임했던 나 혼자만의 역할극은 어쩌면 성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전역일이라고 해서 내가 감상에 젖을 리는 만무했고, 우리는 진한 욕지거리를 공유하며 그대로 위병소를 빠져나와 택시에 올라탔다. 그러곤 다시 지하철로 버스로 갈아타 가며 집으로 향했고, 2년이라는 시간은 그렇게, 기억의 뒤안길로 멀어져 갔다.

 



그리고 어느 날.

전역 날의 기쁨 따위는 완벽히 잊혔을 때쯤, 낯선 길을 걷다 문득, 마지막 순간 눈에 담아왔던 부대의 정경이 떠올랐다.

 

웃고 떠들든 치고받든 간에 매일을 함께했던 생활관이, 툭하면 실망하는 중대장 덕에 뺑이쳤던 연병장이, 꽁꽁 얼어붙은 빨래를 걷으며 어이없어하던 건조장이, 수평도 안 맞는 탁구대에서 진지하게 내기하던 체력단련장이.

 

병장 때의 기억이 힘들었던 일이등병 때의 기억을 덮어버렸는지, 그나마 즐거웠던 순간들이 우울했던 시간들을 위로해 주었는지, 다 끝났다는 안도감이 그간의 힘듦을 감싸 안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지만,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던 곳들이 선명히 그려졌다. 그것도 생각보다 괜찮은 얼굴을 하고서.

 

물론 그렇다고 해서 힘들었던 시간들, 사이가 좋지 않았던 간부나 선임들까지 전부 추억이란 이름으로 미화될 리는 없었다. 내가 그 정도로 넓은 아량을 소유하고 있지는 않았으니까.

 

다만, ‘마지막’이란 단어가 주는 무게가 생각보다 가볍지 않았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정말 싫었는데, 너무 원망스럽고 고통스러웠는데. 다 끝났으니까, 마지막이니까, 이제는 모두 이별했으니까. 용인되고 희석되는 지점이 분명히 존재했다. 나에게는 고통의 공간이었던 곳조차 한 번쯤 돌아보고 싶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 후로 나는 가끔 탐탁지 않은 일에 마주하거나 불편한 사람과 엮일 때면, 시작과 동시에 마지막을 생각한다. 그리고 전역일의 파노라마를 떠올린다. 그러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다.


이것 또한 지나갈 테니, 마지막이 올 테니.

그리고 그 마지막의 무게는 나에게 얼마간의 관대함과 누그러짐을 보장해 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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