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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영 Nov 13. 2024

엄마, 내 결혼식 때는 한복 입지마

길을 잃은 한복

어머니는 땀을 뻘뻘 흘리셨다. 안 그래도 몸에 열이 많아 더위를 잘 타시는 데, 적도의 열대 지방에서 겹겹이 입어야 하는 한복을 입고 앉아 계셨으니 오죽이나 하셨을까?


인도네시아의 결혼식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뻥훌루(penghulu)라 불리는 종교부 국가 공무원의 주재로 거행되는 결혼 서약식(akad nikah)이다. 여기서는 주례가 따로 없다. 결혼 서약이 원만하게 끝나면 뻥훌루가 성혼 선언을 하고, 그날 성혼의 증거물로 '부꾸 니까(Buku Nikah)'라는 작은 수첩을 신랑과 신부에게 하나씩 교부한다. 국가 공무원이 나와서 성혼을 확인한 마당에 신랑 신부가 관청에 가서 따로 혼인신고를 할 필요가 없다.


엄밀하게 따지면 서약식은 결혼식 그 자체다. 그다음에 열릴 피로연은 없어도 그만이다. 동네 사람들에게 피로연을 베풀 형편이 안 되는 가난한 신랑 신부들은 종교부 사무소(KAU)에 찾아가서 결혼 서약식만 치르는 것으로 결혼식을 끝내기도 한다. 사실 우리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우리는 피로연을 허식(虛式)이라고 생각했고, 장인어른께서도 우리 뜻대로 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아내를 끔찍이도 예뻐하셨던 할머님께서 좋은 날 잔치를 열어야 한다며 식을 고집하셨다. 그리하여 나는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동생, 그리고 고교 동창 한 명까지 비행기로 8시간 걸리는 자카르타로 부를 수 있었다.  


머나먼 타국 땅에서 시차 적응이 되기도 전에, 식순(式順)도 잘 모르는 아들 결혼식에서 어머니는 한복이 매우 불편할 수밖에 없어 보였다. 서약식이 끝나고 막간을 이용하여 어머니는 한복을 벗어 던지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피로연에 나타나셨다. 그 자리에 있었던 동생은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내 결혼식 때는 한복 입지마


하나밖에 없는 나의 남(男)동생은 우리나라의 결혼식장에서 여자들에게만 한복을 입히는 행태를 미개(未開)하다고 표현했다. '미개'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너무 강해서, 괜한 오해를 부르는지도 모르겠다. 동생은 한복 자체가 미개한 사람들이나 입는 후진적인 의복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문제는 이걸 왜 여자들만 입냐는 것이다. 입을 거면 남자들도 같이 입어야지. 이 말을 내가 받아서 해석하자면, '북한스럽다'가 맞지 않을까? 양복을 빼입은 최고 존엄이 한복을 입고 인공기를 흔들어대는 여성들의 품에 안기는 그런 장면 말이다.


우리 결혼식이 열린 인도네시아에서 장모님과 처제는 새로 맞춘 끄바야(kebaya)를 입었다. 장인께서도 빠지지 않으셨다. 바띡(batik)과 사룽(sarung)을 걸치셨다. 하객들도 마찬가지다. 남녀노소 누구나 전통의상을 입는다. 고등학교 때부터 외국물 먹었던 동생은 바로 이런 모습을 간파한 것이다. 도대체 유독 우리나라에서 왜 남자는 양복을 입고, 여자만 한복을 입는 괴상한 결혼식을 '전통'이라며 고수해 왔던 것일까?



3년이 흘렀다. 북한산 자락에, 준봉(峻峯)이 자태를 뽐내는 멋들어진 야외 식장에서 테너의 축가를 들으며 동생의 결혼식이 열렸다. 그곳에서 사부인께서도, 어머니께서도 그 누구도 한복을 입지 않았다. 폐백도 없었다.




한복은 길을 잃었다. 코로나 팬데믹 때 결혼식이 열리지 못해서 문 닫는 한복 가게가 속출했다. 반쪽짜리 행사 의상으로 전락한 한복의 비애랄까.


당장 옷장을 열어봐도 한국 사람인 나도 한복이 없는데, 인도네시아 전통의상 바띡은 내 것만 해도 이미 여러 벌이다. 서울에서 열린 한국-인도네시아 수교 50주년 기념 외교 리셉션 때 나는 바띡을 입고 나갔고, 여의도에 있는 인도네시아 대사관에 갈 때도 그걸 거리낌 없이 종종 입는다. 대학원 수업에 나갈 때도 입은 적이 몇 번 있다.


지자체에서는 외국인 손님들을 불러놓고 한복을 입혀 기념사진을 찍고 한복을 홍보했다고 치적을 자랑한다. 겉으로는 웃지만 이걸 꽤 귀찮아하는 손님들도 많다. 무엇보다도 한국인도 길거리에서는 입지 않는 한복의 현실은 가려지지 않는다. 한복 입기를 활성화하겠다며 내놓은 정책은 이것이 대체 호복(胡服)인지 한복인지 수가 없는 이상한 한복 입고 경복궁을 활보하는 외국인들을 풀어놓았다. 한복은 어디에서 길을 찾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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