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2024년 현재 193개 나라와 외교 관계를 수립했습니다. 그중에서 117개 나라가 서울에 대사관을 두고 있습니다. 한강 이남 여의도 노른자위 땅에 터 잡은 인도네시아 대사관을 제외하면 주한 대사관들은 모두 강북(江北)에 있습니다. 하필이면 주한 파키스탄 대사관이 5년 전에 강남으로 이전하는 바람에 인도네시아 대사관의 강남 유일(唯一) 대사관이라는 별난 지위도 사라져 버렸네요.
한때 대한민국 권력 일번지였던 청와대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대사관을 설치한 나라가 어디인지궁금하지 않나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365일 삼엄한 경계가 풀리지 않는, 광화문 광장 사이로 외교부 청사와 얼굴을 마주 보며 웅장한 자태를 뽐내는 미국 대사관이 제일 먼저 떠오르지요. 그런데 미국 대사관은 정답이 아니랍니다.
교황청도 나라냐고요? 전 세계 14억 명 로마가톨릭 교회(천주교) 성도들의 영혼을 인도하는 교황청 자체는 교회이지 나라가 아니지요. 하지만 교황청에 딸린 영토에 대한 교황의 주권을 보장하기 위해 설정된 정치적 실체인 바티칸 시국(市國)은 국제사회에서 국가로 인정받습니다. 바티칸 시국(라틴어명: Status Civitatis Vaticanae)이 올림픽에 출전하는 나라가 아니다 보니 만국(萬國)의 기수가 국기를 들고 행진하는 올림픽 개막식에서조차 바티칸 사람을 구경할 기회가 없어 우리에겐 매우 생소합니다. '시국'은 말 그대로 도시 국가라는 뜻인데 실상은 이탈리아 수도 로마 시내 속에 있는 성곽이나 다름없습니다. 크기가 정말 딱 경복궁만치 작은데, 궁전 자체가 하나의 나라인셈이지요. 그 궁전 같은 교황청(Curia Romana) 안에 로마가톨릭 교회의 수장인 교황이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황은 자신의 영지(領地)인 바티칸 시국의 주권자로서 왕처럼 군림합니다. 교황은 콘클라베(conclave)라 불리는 추기경들의 모임에서 선출되는데, 일단 그 자리에 오르면 스스로 퇴위하지 않는 한 종신 임기를 보장받지요.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바티칸 시국의 인구는 천 명을 넘지 않습니다. 전 국민이 로마가톨릭 사제, 수사(修士), 수녀, 근위병 등 교회 업무를 담당하는 성직자들로 구성됩니다. 그러니까 태어날 때부터 바티칸 시국의 국민이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게다가 로마가톨릭 교회의 성직자들은 결혼할 수 없으니, 국적을 물려줄 혈육이 존재하지 않지요. 그래서 바티칸 시국 국적 취득은 국적법의 양대 원칙인 혈통주의(jus sanguinis)와 출생지주의(jus soli) 어느 한쪽으로도 설명이 안 됩니다. 이러한 독특한 국적 취득 원칙을 관직주의(jus officii)라고 부릅니다.
얼핏 보면 바티칸 시국이 과연 나라일지 의문이 드는데, 국제법에 따르면 영토가 아무리 좁아도, 국민의 수효(數爻)가 아무리 적어도 국가가 되는 데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오히려 국가로서 바티칸 시국의 지위는 인구 2천만 명을 지닌 대만보다 훨씬 더 굳건합니다. 2017년도를 기준으로 교황청은 177개 나라와 외교 관계를 수립했고 117개국에 대사를 파견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포함한 78개의 나라가 교황청에 상주 외교사절단을 파견했지요. 전 세계에 흩어진 교황청 대사관 부지 면적을 다 합치면, 바티칸 시국 면적(0.44㎢)의 몇 곱절은 나오고도 남을 겁니다. 교황 대사는 영어로 ambassador가 아니라 nuncio라고 하고, 교황청 대사관은 embassy가 아니라 nunciature라고 한다는 사실을 상식으로 알아두면 좋습니다. 바티칸 시국은 유엔(UN)에는 옵서버(observer) 자격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제 유엔 회원국 193개국에서 바티칸 시국을 더하니 전 세계 나라의 최솟값은 '193+1=194개'가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