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전 세계에 나라가 몇 개나 되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사회과부도를 펴고 일일이 세어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그런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인터넷에서 검색만 해도 간단하게 알 수 있는걸요.유엔(UN)에 193개 나라가 회원국으로 가입해 있는데, 유엔에는 국가만 가입할 수 있으니 전 세계 국가의 최솟값이 193개인 셈입니다.
그런데 유엔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가 있지는 않을까요? 질문을 한 번 바꿔볼게요.유엔에 가입하지 않으면 국가가 아닌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물음에 답하기 전에 우선 국가(國家)가 과연 무엇인지부터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국어사전 우리말샘은 국가를 아래와 같이 뜻풀이합니다.
일정한 영토와 거기에 사는 사람들로 구성되고, 주권(主權)에 의한 하나의 통치 조직을 가지고 있는 사회 집단. 국민, 영토, 주권의 삼요소를 필요로 한다.
어느 사회 집단이 국가인지 아닌지를 속 시원하게 판단해 줄 권위 있는 기관이나 권력이 국제사회에는 아직 없습니다. 국제사회가 무정부상태이기 때문이죠. 다시 말해, 국가 위에 군림하는 상위의 권력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정부상태라는 국제정치학적 개념이 좀처럼 와닿질 않죠? 쉽게 생각하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투표를 통해 내 고장 살림을 책임질 서울시장과 서울시의회 의원을 뽑고, 나아가 국민 전체를 대표하는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뽑습니다. 그런데'아시아의 대통령'이나 '세계의 대통령'을 한 번이라도 뽑아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대한민국 정부보다 상층에서 대한민국 영토 안에서 주권을 행사할 합법적인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겁니다. 예전에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취임했을 때 일부 국내 언론은"드디어 한국인 중에서 세계의 대통령이 나왔다"고 호들갑을 떨었는데,이는 유엔을 존재하지도 않는 '세계정부'에 빗댄 기자의 무지의 소산입니다.
아무튼 세계정부의 탄생이라는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우리가 국가의 성립을 명확하게 판단하지는 못할 겁니다. 하지만 국어사전의 뜻풀이대로 안정적인 영토와 국민, 그리고 주권이 국가 성립을 가늠하는 요소로 자주 거론되고 있으니, 이를 근거로 유엔 테두리바깥에 남아있는 국가가 또 있는지 따져볼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