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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먼저 러시아인 친구 사귀었네

이슬람 사원 경비원 파힘

by 이준영

지하철 두 번 갈아타기에 무사히 성공하고, 노보쿠즈네츠카야(Новокузнецкая) 내립니다. 모스크바에서 지하철 갈아타기가 제법 까다롭더라고요. 노선마다 환승역 이름이 제각각인 경우가 있거든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이 4호선에서는 '광희역'이고, 5호선에서는 '구동대문야구장역'이라고 한번 상상해 보세요. 그게 얼마나 혼란스러울를요.


기숙사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 역이었던 샤발롭스카야역


제가 가야 할 노보쿠즈네츠카야역은 녹색 노선인데, 주황색 노선의 트레쨔콥스카야역과 환승역으로 묶여있습니다. 아, 그걸 진작에 알았더라면 바보같이 열차를 두 번씩이나 갈아탈 필요가 없었던걸요. 기숙사가 있는 샤발롭스카야역(주황색)에서 편안하게 두 칸만 더 가면 트레쨔콥스카야역이 나옵니다. 위쪽 창문을 열어놔서 터널 구간을 시끄럽게 덜컹덜컹 달리고, 빈 보드카 병이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열차가 그다지 안락하지는 않지만, 아무렴 어두침침한 환승통로를 두 번이나 걷는 것보단 낫고 말고요. 괜히 악쨔브리스카야역에서 내려서 갈색 순환노선으로 갈아타고, 파벨레츠카야역에서 녹색 노선으로 갈아타는 생고생을 사서 했네요.


모스크바 지하철 노선도. 샤발롭스카야역에서 두 역만 더 가면 되는걸, 녹색 라인 타겠다며 쓸데없이 두 번 갈아탔다.


그래도 멍청이 같다고 놀리지는 말아주세요. 스킨헤드가 얼마나 무서운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놓고도, 모스크바에 도착한 지 고작 3일 만에 혼자 지하철을 타고 잘 모르는 곳에 가겠다고 길을 떠났다니깐요. 이 정도면 제 용기가 가상하지 않습니까?


이슬람 사원의 공동 식당. 이곳에서 타타르인 아주머니가 해주신 러시아식 야채국 보르시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인지 나는 동대문 러시아 식당에서도 보르시를 꼭 주문한다.


골목과 골목으로 길을 따라가니 아담한 이슬람 사원이 나왔습니다. 이름은 모스크바역사모스크(Московская историческая мечеть). 리서도 이슬람 사원이라는 게 한눈에 드러나 보이는 이태원 중앙성원과는 달리 이 사원은 무슨 교회 같습니다. 작은 첨탑마저 없었더라면 이슬람 사원인 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겠더라고요. 아무튼 제게는 해외에서 처음 가보는 이슬람 사원이었습니다.




러시아어로 이슬람 사원(모스크)을 '미체찌(мечеть)'라고 하는데, 여성명사입니다. 재미있는 건, 문법적 성별 명사에 부여하는 유럽 언어에서 이슬람 사원이 죄다 여성명사라는 점입니다. 프랑스어로도 '모스께(mosquée)', 스페인어로도 '메스끼따(mezquita)' 둘 다 여성명사이지요. 라틴어로 '메스치타(meschita)'가 여성명사라서 그리된 것 같습니다. 이슬람 사원의 본고장 격인 아랍어로는 '마스지드(masjid)'라고 하는데, 기서는 남성명사입니다.


주흐르 예배(정오가 조금 지나고 나서 근행되는 무슬림 예배)를 마치고 꾸란 낭독 CD를 판매하는 키오스크 앞에 서서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그런 제 모습이 곧 한 사내의 시선을 끌게 됩니다. 이곳을 찾는 사람 중에서 중앙아시아 사람도 있고 간혹 흑인도 있지만, 극동아시아 출신 방문객은 흔치 않지요. 만국의 무슬림 인사 '앗 살람 알레이쿰'으로 인사를 나누고 통성명합니다. 연히 러시아어로 말이지요.


그의 이름은 파힘. 세라믹 가공 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30대 후반 가장이었는데, 이곳 사원에서는 경비원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제가 겨우 그저께 모스크바에 도착한 걸 알고는 자기 아들 녀석을 소개 해 줄테니 잠깐 기다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근처에 근사한 미술관이 있는데 아직 안 가봤다면 꼭 가봐야 한다며, 자기 아들놈을 경호원처럼 옆에 딱 붙여줄테니 길에서 불량배 만날까 걱정하지 말고 함께 다녀오라고 하네요. 그리하여 머리를 빡빡 민 바쉬키르와 다녀온 곳이 그 유명한 트레쨔꼬프 미술관이었습니다.


바쉬키르는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말수가 적어 과묵한 성격이었습니다. 그래도 길거리에서 예쁜 여자가 지나가기라도 하면 절 보고 실실 웃으면서 "크라씨바야(쟤 이쁘지)?"라고 말하는 게 역시 영락없는 남자애였습니다.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공항에서와 같이 금속탐지기를 통과해야 했는데, 바쉬키르의 주머니 속에서는 손잡이가 시커먼 단검이 나왔습니다. 관람객의 소지품을 검사하는 미술관 직원의 얼굴에 놀라거나 당황한 기색조차 없는 걸로 봐서, 이 거친 도시에서는 이 정도 호신용품 하나쯤 갖고 다니는 건 예삿일인 듯싶었습니다. 시 한번 강조하지만, 여기는 서울이 아니라 모스크바입니다.


기숙사에 돌아와서 일행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 시간. 저는 포장에 할랄 표시가 찍힌 닭고기 햄을 내놓았습니다. 그리곤 날 이슬람 사원에서 있었던 일이며 트레쨔꼬프 미술관에 가서 일리야 레핀이 그린 그림의 실물을 넋 놓고 봤던 일이며 다 털어놓았습니다. 아들을 쇠몽둥이로 내리쳐 제 손으로 죽여 놓고 슬픈 표정으로 아들의 시신을 보듬어 안은 피의 군주 이반 뇌제의 입체적인 성격 묘사에 말을 잃었다는 것도 말이죠.

"이야, 우리 중에서 준영이가 현지인 친구를 가장 먼저 사귀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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