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선도를 읽다가 바로 앞에서 들리는 굉음에 화들짝 놀랐습니다. 웃음기 없는사람들의 표정처럼 지하철 문이 투박하고 거칠게 닫히네요. 승객이 문에 치여 다치든 말든 내 알 바가 아니니 상관하지 않겠다는 차가운 심장을 가진 이 도시에서 살아남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습니다.
고개를 빳빳이 들고, 허리를 쫙 펴고 당당하게 걸으려 애썼습니다. 눈 감으면 코 베어 간다는 이 도시에서숫기 없는 애송이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말이지요.
그렇게 겉으로는 기백이 철철 흘러넘치는 척했지만, 껄렁껄렁한 아이들이 몇 발치 앞에서 걸어오는 게 보이기라도 하면주눅이 들었습니다.
"혹시 쟤네들이 스킨헤드이면 어쩌지?"
주로 아시아계 남자들을 노려 '묻지 마 폭행'을 가한다는 악동(惡童)들에 얽힌 소문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많이 들었던지라 저는 이 도시의 10대 청소년들이 무서웠습니다. 얘네들은 고기를 많이 먹어서 그런가, 중학생 나이쯤만 돼도 체구가 우리나라 성인만 했지요. 괜히 레슬링의 나라라고 불리는 게 아니랍니다.
뜬 눈으로 보낼 10시간 비행의 무료함을 달래줄 기내 엔터테인먼트 화면이 일류신(Ilyushin) 기(機)의 좌석에는 없었습니다. 대단한 자랑거리는 아니지만, 우리 집 식구 중에서 일류신 기를 타본 사람은 저뿐이랍니다.
그래서 일행은 여행 안내책자를 돌려봤지요. 그런데 동양인이 태권도 자세를 잡으면 이소룡이라도 나타난 줄 알고 건달들이 겁을 집어먹고 줄행랑을 친다는 얼토당토아니한 내용이 거기에 버젓이 적혀있더라니까요. 그 어처구니없는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는지, 일행 중에는 이곳 상점에서 쌍절곤을 구입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무술 유단자라고 한들, 우르르 달려들며 망치와 칼을 휘두르는 겁 없는 아이들을 어찌 당해내겠습니까? 게다가 이 나라에도 촉법소년이란 게 있어서, 망나니들이 인종혐오 범죄를 저질러도 솜방망이 같은 가벼운 처벌로 끝난다지요. 이곳 생활에 지쳐 신물이 난다는 말투로 아돌프 히틀러의 생일날(4월 20일)이 다가오면 미친놈들이 더 기승을 부리니 외출을 삼가라고 당부하는 교민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겁을 잔뜩 집어먹은 토끼처럼 기숙사 방 안에 틀어박혀 웅크리고 있었다면 이 글을 적지도 않았을 겁니다. 이 도시는 위험한 만큼이나 아름답지요. 여기 사람들이 '흐람(храм)'이라고 부르는 흔해빠진 동네 성당은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하고 동화 속으로 빠져드는 착각을 다 불러일으킨다니까요. 일요일마다 동네 성당 종탑에서 일제히 울려 퍼지는 화음은 꼭 들어봐야 합니다. 창가에 앉아 넋 놓고 들었다니까요. 아, 제가 머물던 기숙사 근처에는 돈스꼬이 수도원(Донской монастырь)이 있었지요. 그래서 종소리가 더 크게 들렸나 봅니다. 어학당 가는 길에 트램이 수도원의 높다란 담장을 지나가는데, 웅장한 탑루 또한 볼거리였습니다.
이 도시 사람들은 뭐든 허투루 만드는 법이 없더라고요. 지하 궁전의 응접실을 짓다가 말고 지하철을 뚫은 모양입니다. 휘황찬란한 샹들리에가 천장에 매달려 있고, 세밀한 조각 작품이 촌뜨기들의 시선을 빼앗는 예술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특색있는 역사(驛舍)를 구경하러 역마다 내리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하지만 예술만으로는이곳을 한 달이고, 일 년이고 수도 없이 오가는사람들의심성을 풍요로 채우기힘든가 봅니다. 이곳 사람들이 '흘렙(хлеб)'이라고 하는 빵이 있고 봐야 합니다. 암, 그렇고 말고요. 일단 사람은 배때기에 허기부터 채워야 예술을 감상할 머리가 생긴다니까요.
이 도시에 도착한 지 나흘 만에, 저는 용기를 내어 일행과 떨어져 홀로 탐방을 시작합니다. 숨죽였던 제 성향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미는 시점이 온 거지요. 서점에서 도로 교통지도책을 하나 구했습니다. 여행 안내서에는 나오지 않는 상세한 지리 정보가 필요했거든요. 그리고 이슬람 사원이 이 도시 어느 곳에 붙었나 손가락으로 지도를 짚어가며 확인해 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