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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는 다육이 같더라

잊어버린 일본어 소생(蘇生)

by 이준영


외국어는 다육이(다육식물)랑 비슷한 것 같아요.


한파가 몰아닥쳤던 겨우내, 따사로운 적도의 햇살 기운을 좀 받자며 처가(妻家)가 있는 인도네시아에 잠시 다녀온 사이에, 베란다에 놔둔 다육이가 그만 얼어 죽고 말았습니다. 사막의 모진 추위와 혹독한 더위도 이겨낸다는 다육이라길래 떠나기 전에 물만 충분히 주고 베란다에 그냥 둔 건데, 다육이는 삼 주 동안이나 추위에 덜덜 떨면서 매정한 주인을 원망했겠지요.


오랜 해외 생활을 정리하여 귀국한 후 처음 자리를 잡았던 춘천에 머물 때부터 정 붙이고 키우던 다육이었던지라, 생기 없이 축 처진 몰골을 하고 있어도 쉽사리 뽑아 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따뜻한 봄이 오면 새 걸로 다시 심자며 죽은 다육이를 화분에 그냥 놔뒀고, 아내는 혹시 모른다며 물을 꾸준히 줬지요. 그런데 벚꽃이 필 무렵 죽은 다육이 몸통 주위로 푸르스름한 새싹이 돋아나는 게 아니겠습니까.


겨우내 얼어죽었던 다육이에게 계속 물을 주니, 곁에서 푸른 새싹이 돋았다




제 머릿속에 든 외국어도 다육이 같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한창 배울 때는 열의(熱意)로 정성을 쏟았지만 다른 일로 손 놓고 한참을 잊고 지내자 외국어들은 이미 뿌리부터 썩어 사멸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다시 새롭게 자극을 주면, 기억의 수렁에 빠졌던 단어와 표현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더라고요.


오랫동안 방치하여 잎사귀며 몸통이며 하나같이 축 처진 외국어에 다시 정붙여 되살리는 것은 새로운 외국어를 하나 익히기보다 더 쉽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자존심 다 내려놓고 기초로 돌아갈 용기가 있다면 말입니다. 어린 새싹들을 틔운 다육이처럼.




그런 마음가짐으로 일본어를 다시 시작해봅니다. 동네 서점에서 이책 저책 펴가며 비교해 보다가 히라가나와 가타카나 읽기부터 나오는 '쌩기초' 책을 하나 구입했습니다.


"아니 내가 왕년에는 수능 일본어 만점을 맞았고, 아사히신문(朝日新聞)도 읽었는데"



이런 알량한 자존심을 내려놓지 않으면 잊어버린 외국어를 끝내 되살릴 수 없겠더라고요. 수많은 부품 중에서 어디에 나사가 풀렸는지, 굽이굽이 기다란 파이프에서 물이 줄줄 새는 누수 지점이 어디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출발점에서부터 꼼꼼하게 훑으며 점검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애초에 혼자 익힐 때 잘못 알고 넘어간 곳도 눈에 띄어 땜질하게 됩니다. 게다가 일본어 첫걸음 교재를 펼쳤을 때 그 설렜던 마음도 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는 일이 잘 풀려 형편도 좀 나아지면, 이제 연로하셔서 장시간 비행이 어려우실 부모님 모시고 교토(京都) 온천여행이나 더 늦기 전에 한번 다녀와야겠습니다. 수십만 킬로미터를 혼자 날아다니며 쏘다녔지, 정작 부모님과 함께 나가본 적이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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