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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영 Aug 04. 2024

넌 러시아에 도대체 왜 온 거야?

내 전공은 아랍어

러시아에서 참석하는 첫 금요 회중예배. 예배를 인도하는 이맘의 설교를 알아듣기에는 제 러시아어 실력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냥 현지인들과 간단한 주제로 대화하며 일상적인 소통이 가능한 수준이었지요. 아프리카 가나에서 온 흑인 남성과 영어로 인사를 나눴습니다.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가나는 영어권 국가입니다. 이태원 중앙성원에서도 가나 출신 무슬림 형제들과 말을 섞어본 적이 있습니다.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영어로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났네요. 이 형제는 민족우호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한다고 합니다.


현지에서 루데엔(РУДН)이라 불리는 민족우호대학교는 주로 아프리카 학생들이 많이 모이는 곳입니다. 구소련 시절, 공산정권에 '우호'적인 아프리카 국가 학생들을 대거 받아들여 친소파를 양성할 목적으로 1960년에 문을 연 학교입니다. 아프리카가 탈식민화된 것도 그즈음이지요. 미국을 앞질러 우주인을 태운 우주선을 세계 최초로 지구 궤도에 올리며 눈부신 과학 기술을 자랑했던 소련에 이제 갓 독립한 나라의 반(反)제국주의 지도자들이 우호적인 눈길을 보낼 법한 시기였습니다. 유리 가가린의 우주비행 이야기는 제가 다녔던 러시아어학당의 교본에도 등장하는 러시아가 자랑하는 영웅담이지요. 하지만 그가 지구로 귀환할 때 선체(船體) 결함으로 죽을 뻔했다는 뒷이야기는 결코 교본에 나오지 않습니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당시에 흑인으로서 모스크바 생활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았답니다. 인종차별 문제는 미국에도 있고 유럽에도 있으니 러시아만 콕 집어 탓할 게 아니지만, 모스크바에서 흑인을 겨냥한 혐오 범죄 수위가 꽤 높았다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흑인 학생이 자주 보이는 루데엔 근처에는 유난히 스킨헤드가 많으니 그 근처엔 얼씬도 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교민도 있었으니깐요. 그런 생각으로 가나에서 온 그 형제를 쳐다보니 뭔가 피곤한 기색이 느껴졌습니다.




전공을 묻는 그의 질문에 저는 한국에서 '아랍어'과에 다닌다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원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메디나이슬람대학교(Islamic University of Madinah)에 장학생으로 선발되었지만 그걸 포기하고 러시아에 왔다고 이야기했지요.


"맙소사! 넌 러시아에 도대체 왜 온 거야?"  


그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제게 다그치듯 묻습니다. 사우디에 가지 않고, 뭐 볼 게 있다고 여길 왔냐는 거죠. 자기 나라에서는 그 이슬람대학교에 자리 하나 받는 게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합니다. 거기에 입학하기가 그렇게 힘들다는 말은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친구한테도 나중에 들었습니다. 제가 내팽개쳤던 그 자리가 루데엔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는 그 가나 형제에게는 꿈에 그리던 기회였던 모양입니다.


"원래는 말이야."


사원에 모였던 사람들이 각자 생업으로 돌아가느라 뿔뿔이 흩어지고, 우리는 빈 벤치에 걸터앉아 대화를 이어갑니다.


"우리나라에서 월드컵 축구대회가 열렸던 해에 내가 메디나에 갔어야 했지. 그런데 병역 문제가 마음에 걸렸던 거야. 우리나라에서 사지 멀쩡한 남자라면 2년 2개월 동안 꼼짝없이 군복무를 해야 하지. 아랍어를 배우다 말고 군대에 끌려가면 총 들고 보초 서는 동안 다 까먹지 않겠어? 그리고 군대에 늦게 가면 나보다 나이 한참 어린 것들한테 굽신거려야 하는 것도 싫고 말이야. 그래서 우선 군대부터 갔다 오기로 마음먹은 거지."


"흠, 그렇다면 군대가 너에게 아주 귀중한 기회를 앗아간 셈이군."


그가 안 됐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위로해 줬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의 위로를 받을 자격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고,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습니다. 제 이야기에는 그에게 다 털어놓지 못한 말들이 생략되어 있었지요.


나이 어린 놈들에게 경례하는 게 싫어서 군대에 먼저 다녀와야겠다는 게 빈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2002년 그해에 내 평생 다시 있을까 말까 한 어마어마한 축구 경기를 현장에서 직접 보고 싶었고, 그래서 다니던 학교도 휴학해 놓고 군입대마저도 월드컵 이듬해로 잡아놨지요. 뭐, 축구를 위해서라면 한 살 어린 애들한테 존댓말 하는 건 참을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깐요.


"러시아어는 말이야."


"이브라힘, 지금 바쉬키르랑 카잔스키 역에 가서 열차표를 끊어오게. 야간열차로 끊으라고 바쉬키르에게 일러뒀네."



사원의 경비원, 파힘이 불쑥 나타나 대화에 끼어들었습니다. 카잔(Kazan)에 가게 되어 마음이 잔뜩 들뜬 저는 가나 형제에게 하려던 이야기를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와는 다음에 계속 이야기하기로 하고, 서둘러 휴대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헤어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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