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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생활도 편안한데 러시아어나 배워볼까?

알수(Алсу)에게 빠졌다

by 이준영

지금으로부터 딱 20년 전, 군복무를 하던 때 러시아어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일병 정기 휴가를 나갔다가 부대로 복귀하기 전에 레코드 가게에 들렀는데, 러시아 대중가요를 모아놓은 음반이 눈에 띄었고 호기심에 그걸 샀습니다. 그리고 1번 트랙에 수록된 알수(Алсу)라는 여자 가수가 부르는 겨울 꿈(зимний сон)이라는 노래에 완전히 꽂혀버렸습니다. 속지에 사진이 없으니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목소리만 듣고도 완전히 빠져버린 거죠. 2000년 스웨덴에서 열린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러시아 대표로 나가서 2등을 했다는데, 저는 유로비전이라는 게 있는지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전출을 명령받고 새롭고 낯선 부대에 더플백을 풀어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PX병(군부대 매점 판매병) 보직을 받았습니다. 원래 PX 업무를 보던 사수가 일주일 동안 일을 저에게 인수인계하고 소대로 올라가기로 되어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수는 일을 사나흘 봐주는 둥 마는 둥 하더니 PX에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지요. 보일러실에 틀어 박혀있었을 게 분명합니다. 사수는 보일러병을 겸하고 있었거든요. 이제 PX를 저 혼자 우두커니 지키게 되었습니다. 아니, 독차지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편이 솔직할 것 같네요. 오히려 더 잘됐다 싶었거든요.


군대에서 혼자 있을 공간이 생겼다는 사실에 저는 참 기뻤습니다. 이게 얼마 만에 다시 찾은 고독(孤獨)인가요? 군대 고참은 아무리 편안하게 잘해준다고 해도 역시 고참일 뿐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계급사회에서 상급자란 어쩔 수 없이 불편한 존재입니다. 저는 휴가 때 CD와 카세트테이프를 돌릴 수 있는 묵직한 오렌지색 오디오 재생기를 집에서 들고나와 부대로 복귀했습니다. 그리고 그걸 계산대 바로 옆에 있는 나지막한 금고 위에 올려뒀습니다.




이곳으로 전출 오기 전에 제가 지냈던 부대는 연대 본부에 있는 직할 전투부대였습니다. 거기에서는 병사들끼리 계급별로 할 수 있는 행동을 부대전통이라며 시시콜콜 정해놓았습니다. 침상에 앉아서 양말을 신으려면 일병이 꺾여야 한다든가, 세탁기는 상병 이상만 돌릴 수 있다던가. 이제 부대에 막 전입해 들어온 신병은 엉거주춤 선 자세로 양말을 신어야 했지요. 그런 모습이 신병을 더 바보같이 보이게 했을 겁니다. 이런 내무부조리는 내용만 다를 뿐이지 다른 부대에도 존재했습니다.

짬밥을 이제 어느 정도 먹을 대로 먹어 부대 내에서 슬슬 고참 대접을 받기 시작하는, 소위 '상꺾(복무기간이 26개월이었을 때 기준으로 17개월 복무)'이 아니라면, 서열 낮은 나부랭이가 내무실(생활관)에서 듣고 싶은 노래를 듣겠다고 오디오를 트는 일은 정말이지 상상도 못 할 일이었습니다. 점호를 앞두고 청소 시간에 걸레로 쓱쓱 먼지를 털어낼 때나 오디오에 손을 대 볼 뿐이었지요.




새 부대는 서해안을 지키는 해안 독립 중대였습니다. 하지만 제겐 이곳의 지휘관이 새로운 상관(上官)은 아니었지요. 연대 직할전투부대의 그 중대장이었거든요. 그는 2차 중대장 보직을 이 힘든 부대로 받았던 겁니다. 매일 같이 하루 4시간도 못 자며 해안순찰을 버텨내면서도 힘든 기색 하나 내비치지 않는, 그야말로 사명감이 철철 흘러넘치는 육사 출신 참군인이었습니다. 게다가 중대장은 병사들 사이에 만연한 악습을 뿌리째 뽑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중대장과 소대장, 그리고 TOD(영상감시장비) 기지장 등 독신 간부들이 생활하는 BOQ가 중대 영내(營內)에, 병사들의 막사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중대 내 최고 권력자인 중대장이 퇴근도 안 하고 24시간 영내에 있는 셈이지요.


PX병이 된 저는 행정병과 운전병들이 모여있는 본부 소대 내무실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본부 소대 인원들은 중대 본연의 임무인 야간 해안경계 작전에 투입되지 않는 터라 항상 막사에서 생활했습니다. 그래서 본부 소대 인원들은 중대장과 대면할 일이 많았고, 중대장이 내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일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니 내무부조리가 있을 수가 없었지요.


하지만 매일 해안경계 작전에 투입되는 타 소대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거기서는 손버릇이 거친 사람들이 매복 작전 장소에서 후임병을 구타하기 일쑤였고, 인원들이 늘 밖에서 작전을 수행하다 보니 짬 먹은 중사급 부소대장들도 심각한 일만 아니면 쉬쉬하고 넘어간다고 들었습니다. 중대장은 그런 사정을 다 알고, 전입해 온 저를 본부 소대에 집어넣었던 겁니다.

행정병과 운전병은 같은 본부 소대이지만 서로 다른 내무실을 사용했는데, 행정병보다 더 위험한 장비들을 다루는 운전병 사이에서는 내무부조리가 좀 남아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래도 제가 전출 오기 전 그 부대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행정병 내무실은 분위기는 참 좋았습니다. 분대장이었던 병장 최고 선임은 성격이 제법 온화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등병 막내가 듣고 싶은 노래를 듣겠다며 오디오를 틀기도 하고, 리모컨을 쥐고 TV 채널을 요리조리 돌리는 모습을 보고 신세계에 온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평일이고 주말이고, 아침 점호 때부터 저녁 점호 때까지 하루 종일 PX 안에서 생활했습니다. 해안경계부대의 일과는 단조롭습니다. 연대가 유격이나 혹한기, 행군 같은 굵직한 훈련일정에 돌입해도 그건 남의 일이었지요. 이 부대는 365일 늘 하던 대로, 여름에는 쉴 새 없이 달라붙는 모기떼에 뜯겨가며, 겨울에는 바다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을 맞아가며 해안경계작전을 수행합니다. 이건 훈련이 아니라 작전이니깐요.

해안경계작전에 투입되지 않는 우리 본부 소대원들은 연대 단위로는 가장 큰 훈련인 연대전술훈련평가(RCT)가 있다고 하더라도, 부대 앞 도로에 나가 차단선을 치고 오지도 않을 대항군을 기다리다가 상황 종료 무전을 받고 철수하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연대직할 전투부대에 있었다면 잔뜩 뺑이를 쳤을 텐데 말입니다.



이제 군 생활이 너무 편해졌던 것일까요? 러시아 노래를 듣다가 러시아어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고개를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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