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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영 Aug 06. 2024

러시아에서도 내 이름은 이브라힘

[h] 소리 못 내는 러시아 사람들

러시아어 키릴 문자에는 영어의 '에이치(h)'에 해당하는, 발음 기호 [h] 소리가 나는 자음자(子音字)가 없습니다. 그래서 러시아 사람들은 홍콩(Hong Kong)을 '곤콘그(Гонконг)'라고 우스꽝스럽게 적어놓지요. 우리말 '이응' 글자와 같이 영어의 복자음 -ng[ŋ] 음가를 표기할 방법이 없어서 러시아 사람들은 우리나라 기업 삼성을 '삼순그(Самсунг)'라고 적습니다. 당연히 제 이름도 엉망이 되지요.


저는 해외에서 이브라힘(Ibrahim)이라는 이름을 씁니다. 지금도 쓰고 있는 이 아랍어 이름은 영어로 에이브러햄(Abraham)과 뜻이 같습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그 아브라함이 맞습니다. 제가 이슬람교에 입교할 때 이태원 중앙성원의 술레이만 이행래 이맘님이 지어주신 이름이었지요. 그래서 어디서든 외국어 이름을 따로 만들 필요가 없었습니다. 터키에서도 인도네시아에서도 저는 이브라힘입니다. 


다만, 요즈음에는 무슬림 국가가 아닌 곳에서 외국인을 대할  초면에 종교색이 팍팍 드러나는 이름을 꺼내기가 부담스러워서 그냥 '준(Jun)'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렇다고 존(John), 탐(Tom), 크리스(Chris) 같이 영국문화원에 다닐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곧잘 만들어 쓰는 영어 이름을 쓰지는 않을 겁니다. 따지고 보면 그런 이름들도 성경에 뿌리를 둔 교색 짙은 이름인걸요. 그러니 러시아에서 제가 세르게이(Сергей)나 드미트리(Дмитрий)가 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러시아 사람들이 [h] 발음을 내지 못하다 보니 제 이름을 '이브라(Ибрагим)'이라고 적고, 그렇게 읽어버립니다. 아랍어의 하(Haa, ه) 자음자는 죄다 발음이 [g]로 변해 버리는 겁니다. 함자(Hamza)라는 모로코계 벨기에인 래퍼의 이름은 러시아에서 '감자(Гамза)'가 됩니다. 그가 강제 개명을 당한 걸 알면 기절초풍할 노릇이겠군요. 러시아에는 라술 감자토프(Расул Гамзатов)라는 캅카스 출신의 위대한 시성(詩聖)이 있지요. 그의 이름을 원래대로 발음할 수 있는 타타르(Tatar) 사람들은 로마자로 함자토프(Hamzatov)라고 적습니다. 제 이름도 원래대로 이브라힘이라고 쓰고 발음할 겁니다. 지금 열차 안에서 저랑 마주 보고 앉아 말을 걸어오는 러시아 아가씨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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