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어 공부방 PX를 후임에게 넘겨주고

떨어질 낙엽도 없다는 겨우내 말년 병장

by 이준영
Звёзды поднимаются выше, свет уже не сводит с ума
Если ты меня не услышишь - значит, наступила зима
Небо, загрустив, наклонилось в сумерки укутав дома
Больше ничего не случилось, просто наступила зима

별들이 하늘 높이 떠올라, 불빛은 더이상 넋을 훔쳐가지 않지
네가 이제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면 그건 겨울이 왔기 때문이야
하늘이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집들을 얼싸안으면서 땅거미가 내려앉았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단지 겨울이 왔을 뿐이야

- 알수의 <겨울 꿈> 중에서

3월 달력에 가위표가 늘어가는 데, 하늘은 이 겨울을 끝낼 생각이 없나 봅니다. 떠나는 날까지 고생하라며 함박눈을 마구 뿌려대네요. 말년 휴가를 괜히 일찍 당겨썼습니다. 전역까지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거든요.


"전 병력 제설 장비 준비해서 연병장으로 집합!"


중대장의 호령이 스피커를 타고 막사에 쩌렁쩌렁 울려 퍼집니다.


전역 바로 전날로 복귀 날짜를 맞춰서 말년 휴가를 나가라는 선배들의 충고를 역시 허투루 듣는 게 아니었습니다. 말년에 제설 삽 들고 돌덩이처럼 무거운 눈을 퍼 나르게 생겼네요. 말년 병장이 조심해야 할 나뭇잎도 다 떨어졌지만, 여기선 눈송이를 끝까지 조심해야 했습니다. 눈이 유독 많이 내린다고 하여 우리들은 이곳을 '설안(雪安)'이라고 불렀거든요.




우리 중대는 현역으로 복무하는 실제 인원이 대대(大隊) 본부 주둔 병력보다 더 많은 독립부대입니다. 향토사단에서는 우리처럼 1년 365일 24시간 내내 작전을 뛰는 부대가 아니면 대부분 예비군 편제라서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부대 PX 매출액이 대대 본부 PX 매출액보다 많아야 정상이지요.


하지만 제 사수는 일과시간에는 PX를 닫아놓고 행정반으로 올라가 본부 소대원들의 일을 도왔다고 합니다. 원래 일과시간에 PX를 잘 안 가니까 독립 중대에서는 그게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제 사수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습니다. PX를 마치 편의점처럼 운영하기로 한 겁니다. 소대원 앞에 코빼기도 비치지 않고 일과시간에도 PX에 죽치고 앉아서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했습니다. 러시아어를 공부하면서 말이지요.


마침, PX 안에는 아직 포장 비닐을 뜯지도 않은 주황색 셔츠가 있었습니다. 저는 전투복 상의를 벗고 편해 보이는 그 셔츠로 갈아입었습니다. 셔츠엔 육군 복지근무지원단 마크가 있었기에 간부들도 그게 PX병의 평상시 근무복이라고 생각하고, 제가 일과시간에 전투복을 탈의하고 돌아다닌다고 나무라지 않았답니다.




부대원들은 새롭게 바뀐 PX 운영 방식을 반겼습니다. 그리고 PX 문이 열려있다면 수요는 창출됩니다. 일과시간에도 PX로 내려오는 부대원들이 많아지기 시작합니다. 이제 우대 중대의 PX 운영시간은 식당에서 아침밥 먹고 저녁 점호를 받을 때까지로 늘어났지요. 하지만 우리 소대원들은 저를 좀 원망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PX에 종일 처박혀 있으니, 그들에겐 일손 한 명이 사라진 셈이잖아요. 게다가 저는 신병이 아니라 일병 계급장을 달고 이곳으로 전출 와서 본부 소대 서열표 중간에 딱 떨어졌습니다. 기영이 같은 막내에게는 원치 않은 선임이 한 명 더 생겨버린 꼴입니다.


그래서 저는 소대원들과의 관계가 나쁘지는 않았으나 나중에 짬을 더 먹고 이들을 이끌고 나갈 만큼 신망을 얻지 못하게 됩니다. 제가 병장으로 진급할 무렵 분대장이 전역했고, 저는 분대 최고 선임이 되었습니다만 4개월 후임에게 분대장 자리를 양보하게 됐지요. 불태워버리고 싶을 만큼 귀찮은 빈대라는 녹색 견장 따위에 관심 없었던 저는 중대장의 결정을 반겼습니다.

아무튼 구멍가게 주인이 맨날 자리에 앉아 있으니, 매출은 당연히 급상승입니다. 부사관 신분이었다가 장기 복무심사에 떨어져서 전역한 뒤 군무원이 됐다는 PX 관리관도 연신 싱글벙글합니다. 엄청난 매출 신장 덕분에 육군복지단 광주지점(지금의 국군복지단 광주지원본부)의 모범 PX로 선정되었고, 제가 전역할 무렵 관리관도 바닷가 촌구석에서 벗어나 '빛고을' 광주로 영전(榮轉)했습니다. 저는 말년 병장이 되고 나서도 내무실에서 소대원들과 TV를 보며 노닥거리며 앉아 있기보단 평일이건 주말이건 상관없이 PX에서 내내 시간을 때웠습니다.


제 PX는 '만남의 광장'이기도 했습니다. 주말이면 장병들의 면회 혹은 외출 및 외박을 위해 부대로 찾아온 가족이나 여자친구가 제 PX에서 반가운 얼굴을 기다렸습니다. 위병조장 없이 병사 둘이 서서 근무하는 볼품없는 위병소를 통과하면 바로 보이는 가건물이 제가 이곳으로 와서 14개월 남은 군 생활을 보내는 내내 안식처가 되어 준 PX였습니다. 하지만 저도 이제 나가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말년 휴가를 나가기 한 달 전을 즈음하여 부사수를 받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PX에서 삐대는 게 좋아서, 부사수에게 PX 일을 모두 인수인계 해놓고도 전역 하루 전날까지 계속 일을 봐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행정보급관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PX 운영 중에 발견하는 문제에 대한 책임을 부사수가 홀로 떠맡도록 행정보급관은 저를 PX에서 쫓아냈습니다. 아마도 결손(缺損)이 생겼을 때 책임 소재를 분명하게 해 두려 한 것 같습니다. 부대의 살림꾼인 행정보급관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그때 좀 섭섭하긴 했네요.


저는 대구(大邱)에서 몸만 태어나고 줄곧 수원에서 자랐음에도 대구에서 왔다는 타소대 신병에게 PX를 물려주려고 했습니다. 저는 군에 와서 이상하리만치 지연(地緣)을 따졌습니다. 아마도 제가 군에 와서 외로움을 많이 탔고, 부모님의 고향을 통해 그분의 온기를 느꼈나 봅니다. 저의 간택을 받은 그 대구 출신 후임의 낯빛에서 전역할 때까지 피할 수 없는 고된 해안경계작전에서 벗어나 '이제 군 생활 좀 풀리겠네'라는 기대감에 가득 찬 화색이 도는 게 보였습니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윗분들께 잘 말해보겠다고 큰소리쳤지만 저는 그 아이에게 희망 고문만 시키고 말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아주 미안합니다.

행정보급관은 집안에 재산이 좀 있는 놈을 PX병으로 써야 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해안독립중대로 전출 온 제가 중대장의 배려로 PX병 보직을 맡게 되었으나, 연대 주임원사와 호형호제(呼兄呼弟)하는 연륜과 지역 유지들과 끈끈한 지연과 학연으로 뭉친 행정보급관의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면 저도 PX병이 되긴 어려웠을 터입니다. 부대 관리의 전권은 행정보급관이 꽉 쥐고 있었지요. 행정보급관은 전주 출신 후임 한 명을 제 후계자로 이미 점찍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눈을 치우다 말고, 더는 못 해 먹겠다며 눈삽을 내팽개치고는 러시아어 교재를 들고 PX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PX병 후임이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엉거주춤한 자세로 경례하며 옛 사수를 맞이하네요. 저는 서랍에서 CD를 꺼내 알수의 '겨울꿈'을 틀었습니다. 테이블 앞에 놓인 의자들을 한데 모아 다리를 쭉 뻗고 몽상에 잠깁니다. 밖에서는 중대원들이 콘크리트 도로를 눈삽으로 마구 긁어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래, 겨울은 이제 끝나가고, 어서 여길 빨리 떠야지."


전역하고 4월부터 다닐 러시아어 학원엘 등록해 놓고 휴가 복귀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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