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 합격할 수 있을까요?

논술 학원강사의 이름값만 믿고 보내지 마세요

by 이준영


강사가 수업을 끝내고, 이제 알바생들의 차례가 왔습니다. 저는 교실 문을 열고 첨삭 지도할 학생을 호명하여 교무실로 불러냅니다.


첨삭을 받으려는 아이들의 대기 순번이 적힌 시간표에 따라 바삐 움직여야 합니다. 마치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기다리는 수많은 환자의 대기 줄 같아 보입니다. 한 아이에게 많이 길어봐야 15분 정도만 할애할 수 있습니다. 시간 관리를 못하면 뒤 순번에 있는 아이들이 그날 첨삭 지도를 못 받게 되거든요. 아이들의 글에서 보이는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틈틈이 시계를 보느라 곁눈질로 휴대전화를 흘끔거립니다. 그렇게 네 아이만 봐주고 나면 한 시간이 정신없이 훌쩍 지나갑니다. 제가 첨삭 지도를 잘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저 합격할 수 있을까요?"


한 아이의 첨삭 지도를 마치고 교실로 돌려보내려고 했는데, 자기 딴에는 마음이 꽤 답답했는지 제게 뼈 있는 질문을 던집니다. 고3 여학생이었습니다. 제가 논술 입시 과정을 한 바퀴 돌아본 게 아니라 이 학생의 당락을 예견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글 구성 능력이 형편없었고, 끄적여 놓은 글도 주술 호응 관계가 엉망인 비문투성이었던 터라 합격할 가능성이 작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알바생 주제에 곧이곧대로 말해서 아이의 기를 죽여놓으면 안 되지요. 그러다 아이가 수강을 포기라도 한다면 그 불뚱이 저한테 튈지도 모르니까요. 저는 "아직 논술 시작한 지가 얼마 안 되었으니 강사 선생님 수업 열심히 듣다 보면 많이 개선될 거야"라는 마음에도 없는 학원 관계자다운 격려를 아이에게 늘어놓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저 여기 논술 학원 다닌 지 꽤 됐어요"




논술 첨삭 알바 일을 시작하기 전에 논술 입시에 대한 책을 몇 권 훑어봤습니다. 정시로 원하는 대학에 갈 가망이 별로 없어 보이는 학생들이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들어오는 문이 바로 논술이라고 글쓴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참 역설적이지 않습니까? 논술을 잘하려면 사고력과 논리력이 뛰어나야 하는데, 정작 현실에서는 학부모들이 입시 전쟁의 벼랑 끝에 몰린 아이들을 꾸역꾸역 되지도 않는 경쟁에 밀어 넣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학원들은 소위 '일타 강사'들을 내세워 값비싼 논술 단과 상품을 만들어 놓고, "누구는 5등급인데 연세대 갔더라"라는 식의 희망고문이라는 물감을 잔뜩 처바른 광고로 절박한 아이들을 꼬드겨서 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우더라니까요.


이런 논술 강의 상품에서 핵심 서비스는 첨삭 지도이고, 학부모들은 그 유명하다는 강사가 아이들이 쓴 글을 직접 봐주리라 철석같이 믿고 있을 터이지요. 그러나 한 반에 어림잡아도 스무 명 남짓한 아이들을 그 유명하다는 강사가 일일이 봐주긴 어렵습니다. 그런 강사들은 그날 다른 반 수업도 진행해야 하고, 다음날에는 다른 학원에서도 수업 스케줄이 있는 매우 바쁜 스타 강사입니다. 비싼 수강료를 내고 학원에 등록한 아이들이 저같이 대학원 다니는 알바생으로부터 첨삭 서비스를 제공받게 됩니다.




다음 주에 받아 든 대기자 명단에서 자신감이 꺾여버렸던 그 아이가 사라졌습니다. 제가 강사로부터 미리 전달받았던 그 아이의 답안은 이번에도 역시나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수업을 계속 듣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을 정도였지요. 수능 시험에 더 집중하는 게 차라리 낫겠습니다. 저는 속으로 아이가 과감하게 현명한 판단을 내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교육 현장에서 푼돈을 좀 벌겠다며, 그 말을 아이에게 용기 있게 해주지 못했던 저 자신이 아주 부끄러웠습니다. 얼마 후 저도 생각이 많아지고 이런저런 사정까지 겹치면서 결국 사직서를 던지고 두 달 간의 '가짜 선생님' 노릇을 그만두었습니다.


"얘야, 선생님이 그때 솔직하지 못해서 미안해. 수능에서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랄게"




keyword
작가의 이전글20년 흘러도 들춰보는 좋은 러시아어 교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