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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영 Sep 11. 2024

모두가 큰 차를 타면 우리는 안전해질까?

미국 도로 위의 안보딜레마

저는 주차를 잘하지 못합니다. 운전면허 장내 기능시험 때 주차 과제에서 큰 감점을 당해서 간당간당 합격했습니다. 운전면허를 따고 나서도 주차에는 영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 운전면허는 15년째 신분증 역할만 하고 있네요.


작은 차를 몰면 주차가 좀 쉬울까요? 우리 집 차가 몸통이 큰 SUV인데, '모닝' 같은 경차는 저같이 운전 감각이 둔한 맹추에게도 주차할 때 편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이놈아, 작은 차 몰다가 사고 나면 죽어"라며 운전이 자신 없으면 차라리 그냥 하지 말라고 하셨지요.


아니나 다를까 서울에서 부산까지 전국의 법원 등기소를 시간 다툼하며 바쁘게 다니셨던 아버지께서 뒤따라오던 트럭에 후미를 부딪치는 교통사고를 당하셨는데, 우리 차가 컸던 덕분에 크게 다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차의 크기가 생사를 가른다는 걸 이때 배웠습니다. 그리고 저는 운전을 포기했지요.


물리학적으로, 무거운 차량과 가벼운 차량이 충돌할 때 가벼운 차량 운전자가 더 큰 부상을 입는 이유는 가벼운 차량이 질량이 작아 충돌 시 더 큰 속도 변화와 충격을 겪고, 그로 인해 더 많은 에너지가 탑승자에게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무거운 차량은 더 많은 충격을 흡수하고 분산시키는 능력이 뛰어나, 상대적으로 더 안전한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출처: Chat GPT 4o)




도로에 큰 차가 늘어난다면, 사고가 날 때 작은 차를 모는 운전자가 크게 다치거나 죽을 확률이 그만큼 높아지게 되겠지요. 그래서 경제적 여력이 생길 때마다 큰 차로 갈아타려는 강력한 유인이 발생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팔리는 승용차 10종 중에서 7종이 SUV 차량이고, SUV 차량의 시장 점유율이 60%를 웃돈다는 사실은 대중들의 큰 차 선호를 잘 보여줍니다. 너도나도 앞다퉈 큰 차로 갈아타려는 경쟁이라도 벌이는 듯합니다.



모두가 큰 차로 갈아타면 우리는 안전해질까요? 큰 차를 유난히 사랑하는 미국으로 한 번 발걸음을 옮겨봅시다. 미국에서는 해마다 교통사고로 4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는다고 합니다. 주행거리 1마일(mile)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다른 선진국보다 2배나 많다고 하니 미국의 도로는 무척 위험해 보입니다. 특히 덩치가 큰 픽업트럭이나 SUV가 체급이 낮은 경차와 충돌하여 다른 운전자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합니다. 2022년 기준 미국에서 판매되는 차량의 평균 무게는 1,857킬로그램(㎏)으로, 유럽 평균보다 20%나 더 무겁습니다.


게다가 차가 점점 더 무거워진다고 운전자가 마냥 안전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차량 중량 증가에 비례한 안전이라는 효용의 증가분이 줄어드는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Law of diminishing marginal utility)이 적용됩니다. 미국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IIHS: Insurance Institute for Highway Safety)의 연구에 따르면, 교통사고 발생 시 중량이 무거운 차를 모는 운전자가 안전할 확률이 높아지긴 하나, 차의 중량이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운전자가 안전할 확률에는 큰 차이가 없고 오히려 상대 운전자의 치명률만 높이는 결과를 낳습니다. 게다가 큰 차가 도로에 바글거리면 큰 차끼리 충돌하여 운전자가 치명상을 입을 가능성이 높아지겠지요.   





이런 모습은 국제정치학에서 말하는 안보딜레마(Security Dilemma)와 유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안보딜레마란 국가들이 자신들의 안전을 증대하려고 군사력을 증강하면, 다른 국가들이 이를 위협으로 인식하여 추가적인 군사력을 증강하게 되고, 결국 전체적인 불안정성을 키우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현상을 일컫는 용어입니다. 운전자들이 더 큰 차량을 선택하는 이유는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려는 것인데, 도로 위에 큰 차들이 많아지면 저처럼 가벼운 차를 운전하려는 사람들도 상대적으로 더 큰 위험을 느끼게 되어 더 큰 차량을 선택하는 안전 경쟁에 가담하게 됩니다. 결국 많은 사람이 큰 차를 몰게 되니 운전자 개개인의 상대적 안전성은 유지되더라도 도로를 점령한 큰 차끼리 충돌할 가능성이 커지니 교통사고 발생 시 절대적 위험성이 증가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든 운전자가 동시에 큰 차량을 포기하고 교통 규칙을 준수하는 집단적인 행동이 필요한데, 안보딜레마처럼 개별적으로는 '다른 사람이 작은 차를 선택하면 내가 더 큰 차를 선택해 이익을 얻겠다'는 유혹이 크기 때문에 집단행동이 어렵습니다. 이러한 딜레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개인 행동을 유도하는 정책적 개입과 사회적 인식 변화가 필요합니다. 프랑스와 노르웨이에서는 고중량 차량에 추가 비용을 부과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고, 연비 효율과 탄소 배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여 큰 차 사용을 억제하는 방안도 고려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개인들의 선택이 도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인식하도록 돕는 사회적 캠페인과 교육 프로그램을 통하여 운전자들이 안전을 추구하면서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인식 변화를 이끌어내어 공동체 전체의 안전을 지향하는 문화로 정착시키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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