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국기에 관해 이야기하던 중, 인도네시아 이야기가 나오자, 제 친구 레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었지만, 색상이 상하로 붉은색과 흰색인 인도네시아 국기는 뒤집어 달면 완전히 다른 나라의 국기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태극기를 거꾸로 다는 것과는 상황이 다를 것 같았습니다.
작년에 캄보디아에서 열린 동남아시아경기대회(SEA Games) 개막식에서, 깃발을 들고 행진하던 주최 측 공연자가 뒤집힌 인도네시아 국기를 들고 뛰어 외교적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게다가 이런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지요. "빨간색이 위인지 아래인지 헷갈렸다"는 주최 측의 궁색한 변명에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고의적인 행동이라며 분노를 터뜨렸습니다. 특히, 앙숙 관계로 알려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대회에서 인도네시아 국기가 뒤집히는 일이 생기면 SNS는 그야말로 폭발합니다.
현지에서 살다 보니 '상 사카 메라 뿌띠(Sang Saka Merah Putih)'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기 때문에 헷갈릴 수가 없습니다. 인도네시아어로 '메라(merah)'는 빨간색, '뿌띠(putih)'는 하얀색이니, 위에서부터 빨간색-하얀색으로 된 깃발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기억하게 되죠.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의 오랜 식민 통치와 일제의 점령에서 벗어나 자주독립 국가로 새출발을 다짐하며 1945년 8월 17일 독립을 선포했습니다. 이때 인도네시아의 국기 '상 사카 메라 뿌띠'와 국가(國歌) '인도네시아 라야(Indonesia Raya)'가 새 나라의 상징으로 공식화되었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유럽의 작은 나라 모나코와의 국기 문제로 다툼이 발생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국기가 모나코의 국기와 디자인이 완벽하게 동일했던 것입니다.
모나코는 1952년 4월 29일 국제수로기구(IHO: International Hydrographic Organization) 회의에서 인도네시아에 국기 변경을 요구했습니다. 모나코는 14세기 초부터 빨간색-하얀색 깃발을 사용해 왔으며, 1881년 4월 4일 이를 공식 국기로 지정한 만큼 자신들이 이 깃발의 우선권을 가진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인도네시아의 국기가 네덜란드 국기에서 파란색만 없앤 것에 불과하다는 조롱 섞인 비판도 이어졌습니다. 이는 인도네시아가 독립을 선언한 해, 수라바야(Surabaya) 시민들이 호텔 꼭대기에 걸린 네덜란드 삼색기에서 파란색 부분을 찢어 빨간색과 하얀색만 남긴 채 다시 걸었던 '야마토 호텔 사건(Hotel Yamato incident)'을 떠올리게 합니다.
인도네시아도 이런 말을 잠자코 듣고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자와(Java)섬을 중심으로 동남아시아 해양 지역에서 세력을 떨쳤던 마자빠힛제국(Majapahit Empire)의 역사적 유산을 강조하며 반박했습니다. 특히, 하얌 우룩(Hayam Wuruk, 1350~89)의 업적을 기리는 필사본 나가라끄르따가마(Nagarakretagama)를 근거로, 빨간색과 하얀색의 상징이 이미 14세기부터 사용되었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19세기 수마뜨라(Sumatra)와 자와에서 네덜란드 식민 통치에 맞서 떨쳐 일어났던 주민들의 항거에서도 이 색 조합의 깃발이 사용되었다는 역사적 증거를 제시했습니다. 즉, '상 사카 메라 뿌띠'는 인도네시아 건국자들이 자의적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인도네시아 민중 속에 살아 숨 쉬는 독립과 민족적 정체성의 상징이라고 입장을 강력히 고수하고 있습니다.
독립과 함께 '상 사카 메라 뿌띠'는 다양한 종족, 문화, 종교적 배경을 지닌 인도네시아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할 민족적 사명을 안은 상징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훗날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수카르노(Soekarno)가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후 자카르타에서 빨간색-하얀색 깃발이 국기로서 새 나라의 하늘 높이 처음으로 당당하게 나부끼게 되는데, 이는 수카르노의 부인 파트마와티(Fatmawati) 여사가 독립 선언 한 해 전에 어렵사리 구한 천으로 손수 짜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깃발은 '븐데라 뿌사까(Bendera Pusaka)'라 불리며 현재는 수도 한복판에 위치한 기념탑인 모나스(Monas)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뿌사까는 인도네시아어로 '국보(國寶)'라는 뜻입니다.
1945년 8월 17일 인도네시아 독립 선언 후 깃대에 올라갈 국기(國旗) '상 사카 메라 뿌띠'를 손수 짰던 파트마와티 여사(좌)와 수카르노 대통령(우)
인도네시아와 모나코가 국기를 놓고 벌였던 다툼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되었습니다. 모나코는 인도네시아가 국기를 변경하지 않으면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고수했지만, 이는 인도네시아의 국제적 지위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와의 독립 전쟁에서 승리한 후 국제사회에서 주권 국가로 인정받았고, 1950년 9월 28일 유엔에 60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습니다. 반면, 지도에 작은 점으로 보이는 모나코는 1993년에야 유엔에 가입할 수 있었습니다. 국기 문제를 놓고 인도네시아와 계속 싸움을 이어가기에는 모나코의 외교적 영향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결국 국기 분쟁은 조정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2009년 국가상징물에관한법률을 제정하면서 '상 사카 메라 뿌띠'의 규격을 가로세로 3:2 비율로 정했고, 모나코는 5:4 비율로 국기 규격을 공식화하며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이윽고 두 나라는 2010년에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수립하며 오랜 대립의 마침표를 찍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