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 살인, 수사, 피의자를 벗겨내면 툭하고 사람이 튀어나온다. 인간 군상의 정수는 희극이 아니라 비극인데, 통상의 비극은 서로 다 행복하려고 애쓰는데 불행한 일이 생기는 것을 말했다면, 이 영화는 놀랍게도 온갖 나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가며 오로지 사랑만을 바라보는 비극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말로 표현하기도 어려운 그 일을 영상미까지 덧붙여 보여주는 이 묵직한 세련됨은 어찌할까.
반복되는 죽음을 명료하게 밝혀야 하는 경찰 장해준(박해일)과 계속 죽음 옆에서 맴도는 피의자 송서래(탕웨이)는 살인사건을 사이에 두고 만난다. 살인과 사랑이라는 통상 이어질 수 없는 맥락이 '내가 사랑해서 죽였어요, 죽을 만큼 사랑했어요, 죽어서도 사랑할게요, 사랑해서 죽는 거예요'라는 묘한 변주들도 연결되며, 이러한 시쳇말과 퇴색한 언어는 영화에서 펄펄 살아 숨 쉰다.
이는 미묘한 둘 사이뿐만 아니라 피의자와 경찰이라는 법적 기준으로 폭력을 생산한 사람과 생산한 사람을 폭력으로 제압할 수 있는 자 사이에 두터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과연 송서래는 어떤 폭력을 생산하게 되는가, 그리고 송서래는 어떤 폭력의 효과를 당하고 있는가. 국가에서 추서 하는 훈장을 받은 독립군 할아버지, 그의 유골을 끌어안으며 딸에게 안락사를 부탁할 정도로 독한 엄마, 그리고 그 둘의 잔해를 끝까지 지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는 딸, 모두 기어코 보이지 않는 폭력에 놓여있다. 국가, 가족, 훈장, 전통, 제사의 억눌림마저 묵묵히 지키려는 송서래는 할아버지의 땅으로 와서 국적의 폭력 앞에 가정 폭력을 견뎌야 했다. 부들거리는 손을 결코 멈출 수가 없다.
장해준은 살인 사건 앞에서 살아 숨 쉰다. 안락한 집까지 미결 사건 사진을 들여온다. 인간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좌판의 도미가 사람을 바라보는 것처럼 사진은 살아있을까? 시신 사진을 푸른색 커튼에 닫아놓지만, 여전히 사진 속의 눈은 여전히 눈을 감지 않는다. 그는 살아 숨 쉰다고 잠을 이루지 못해 매일 죽음과 다를 바 없는 시간을 보내다가, 송서래와 숨을 맞추며 일시적인 깊은 죽음에 빠져들어 그나마 하루를 생기 있게 시작한다. 그리고 송서래 앞에서 국가에서 담보하는 직업적 전문성마저 '붕괴'에 이르고, 송서래는 붕괴하는 그의 목소리를 놓지 못한다.
이 영화를 몇 번이고 다시 보는 이유를 알겠다. 나도 굳이 추가 요금을 더 내서 파일을 대여하기보다는 다운로드한 것이 더 두터운 선택이었다. 용의주도한 살인자(박정민)가 유일하게 우발적 살인을 자신이 진짜 사랑했던 여자와 바람난 남자에게 저질렀던 것을 보고, 은신처가 그 여자 집일 것이라 확신하는 송서래는 사랑하는 이를 안 이유로 한 번도 솔직하지 않은 적이 없다. 가장 무서운 곳이 높은 곳임에도 목숨 걸어 높은 산에 올라가려고 했던 것, 자신이 달려왔던 모든 것 마저 버릴 정도로 정성을 다하려고 피의자의 물증을 감춰주지만, 그 물증을 징표처럼 버리지 못하는 또 다른 정성을 만나는 것을 영화에서 본다. 모두 두텁게 이어지다 나의 삶으로 파고든다. 언젠가는 한 번 그랬던 자신을 떠올리게 되며, 창작이 부족한 나름의 비평으로 감독의 마음을 더 파헤치고 싶으며, 아름다운 탕웨이와 박해일을 반복적으로 만나며 묘한 생각이 드는 것, 그런 조각들이 모여 언제 끝날지 알지 못하는 물수제비 장인의 손길처럼 이 영화에 몰입하고 장면을 더 떠올리게 된다.
그 눈, 그래 그것이었다. 모든 것을 흐릿하게 만드는, 오직 선명한 그 눈빛이었다. 깊은 바다를 건너 담겨있는 더 깊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