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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브로] 차이와 반복, 혹은 바다와 돌_김선우

하루에 시집 한 권 

차이와 반복, 혹은 바다와 돌 / 김선우

들뢰즈에 대한 답사로 


한번도 쉬어본 적 없는 심장 -

이것은 바다의 독백이라고 하자


당신, 당신들을 듣고 만지고 이해하기 위해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 -

이것은 돌들의 대화라고 하자


태어난 이래 한번도 멈춘 적 없는 파도를 보고 있다

단 한번도 같은 형태가 없는 수십억년의 포말

생성과 해체를 동시에 수행하는 줄기찬 근력의 언어 앞에

발 달린 짐승들 달변의 입은 자주 속되다


비로소 이해되기 시작한 태초 - 

라고 해안에 쓰고

너라는 외계의 심장을 향해 내가 귀를 연 때 -

라고 읽었다


이곳에 오기 전 잠시 살았던 다른 바다에서도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 사랑이 죽고도 몸이 살면 그 몸을 뭐에 쓰려고?


바다가 뱉어놓은 살아 있는 돌들이 해안에 앉아 있다


주먹만 한 뜨거운 돌 하나씩을 서로의 가슴에 묻어준 사람들을

여기서는 연인이라 부른다고 했다


 심장은 서로에게 묻어줬던 뜨겁게 뛰는 돌이다. 시인은 거제도의 몽돌해수욕장처럼 검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지 모른다. 돌 위에서 부서지는 파도를 보고 있다. '발 달린 짐승들 달변의 입은 자주 속되다'는 태초의 시간과는 구별되며, 독백과도 구별된다. 시인은 외계를 너로 규정했다. 태초를 공통의 시간이라고 한다면, 외계를 구성하는 너와 나의 '사랑'이라는 관계로 태초의 시간을 벗어난다. 독백이 아닌 달변에 속됨을 겪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이 언제나 받아왔던 다른 바다의 속된 질문과도 같았다. 

  모두가 다 다른, 숨죽인 것만 같은 돌 또한 바다에서 왔다. 지구가 오랫동안 물에 잠겨있었고, 태초는 물에서 시작되었으며, 그 수많은 거품(포말)은 바다의 독백이었다. 비로소 거품에 불과했던 태초가 돌들을 만나서 속되었으나, 몸이 되었고, 주먹이 되었고 뜨거운 돌이 되었으며, 가슴을 나눈 연인이 되었다. 다른 바다, 외계에서 역시 계속되는 입과 귀에서 말은 사라지지 않고 굳어버렸지만, 줄기찬 근력이다. 

 들뢰즈의 주요 생각들, 곧 [차이와 반복]이라는 책 제목처럼 한 번도 같은 적 없었지만, 그렇다고 다른 것 같지도 않았던 그 역설, 들뢰즈가 이성이 아닌 감정으로, 구조에도 포함되지 않고, 현상으로도 끝나지 않는, 뿌리이면서 줄기인 리좀(Rhisome)을 말했던 것처럼, 수많은 파도와 거품의 주름이 돌에 있고, 민무늬근으로 생이 계속되는 한 뛰는 심장에 놓인 삶은 이전 사랑을 여전히 몸에 품으면서도, 몸이 새롭게 가슴이 뛰고 콩닥거림이 곧 영원한 태초가 아닌, 지속되는 태초라고 할 수 있겠다. 어디에도 속하지만 어디에서도 벗어나려는 관계만을 묻어준 사람들이 돌처럼 파도와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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