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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브로] 원주율_조온윤

하루에 시집 한 권, 시 읽기 한편

원주율/조온윤


초코파이를 받았다

피를 뽑고 약해질 때마다 착해지는 기분이 된다


피 주머니가 빵 봉지처럼 부풀어 오르는 동안


원의 둘레를 재는 방법에 대해 생각했다

무수한 직선을 잇고 이어서

곡선을 만들었을 수학자에 대해

사실 휘어짐이란 착시일 뿐이라고 


뼈의 모양은 직선이지만 서로의 뼈를 비스듬히 잇고

뼈를 또 잇고

이어서 

둥그런 원을 만들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상처를 솜으로 막아 피를 굳게 하는 동안엔 

모두가 조금씩만 아파주면

한 사람은 아프지 않을 수도 있지 않냐고


초코파이와 오렌지주스는 맛있고 누군가는

상냥했다

상냥한 사람이 되기까지 고통스러웠을 수도 있다


헌혈의 집을 나서자

파이가 빨간 비닐을 벗으며 둥그렇게 떠오르고 있고


그 속에서 역광을 만들며 걸어가는 사람들

인간의 모양이 휘어지고 있다고 느낄 때 


한 사람을 위해 팔을 꺾는 사람들과 있었다

우리가 햇빛 속에 함께 있음을

무수한 뼈를 엮어 만든 포옹이라 느낄 때 

지평선은 물결이 되어

일렁거리고


이제 바늘 자국을 만져도 아무렇지 않은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돌고

돌아서

나의 차례였다




쉽게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다. "피를 뽑고 약해질 때마다"라는 헌혈의 시간이다. 제목처럼 온갖 둥근 것들이 시인의 사유와 상상으로 드러난다. 사유가 철학적 문맥이 담긴 것이라면, 상상은 직접 경험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하겠다. 먼저 초코파이가 등장하고, 원래는 길쭉했던 피주머니가 붉게 둥그스름해진다. 여기서 시인은 원주율의 정의를 상상한다. 원의 넓이를 구할 때, 직접 구할 방법이 없어 아주 잘게 쪼개면 원을 직사각형 모향으로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만들어낸 개념이 '원주율'이다. 여기서 시인은 잘게 쪼갠 것을 무수한 직선으로, 그리고 그 직선을 사람들의 뼈로 치환하고, 그것을 둥글게 원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 상상했다. 


 사유로써 '모두가 조금씩 아파주면, 한 사람은 아프지 않을 수 있지 않냐고'라면서 헌혈을 다른 방식으로 사유하며 공동체와 관계를 그려냈다. 


 여기서 다시금 초코파이 봉지를 찢어서 파이가 나오는 모습을 지평선에서 해가 떠오르는 아침의 장면으로 상상했다. 여기에서 둥그런 해를 등 뒤에 놓고 역광으로 빛나는 사람들, 그 지평선의 일렁임이 수많은 사람들이 팔을 내어 놓음이라고 사유했다. 둥그런 관계는 '포옹'으로 변주된다. 다시금 시간이 조금 지나 솜을 버리고 흔적도 약하게 남지 않은 헌혈 자국이 더 아프지도 않게 되자, 마지막으로 사유 문장을 다시 떠올리며, 아프지 않은 이유가 바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모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내가 아프지 않은 것이라고 마무리를 짓는다. 


 수많은 시적인 표현보다 일상의 장면에서 시를 벼려낸 것이 참 인상적이다. 상황을 전개하더라도 계속되는 교차되는 이미지가 있다. 내가 시를 쓸 때 얼기설기되는 것과 연관성을 가지며 장면을 환기하고 상상하며 사유를 뻔하지 않게 새롭게 드러냈다. 쉽게 읽히지만 쓰기는 워낙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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