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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문학]맛의 경중과 삶의 존중

Eat&It_Daily Report

새벽녘 전기 포트에서 물을 끓인다. 보통 집에서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면 보이차를 마시는데 여행지에는 가져오지 않았다. 아내가 챙겨 온 티백 중에서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티를 우려내어서 밥 먹기 전에 몸을 따뜻하게 했다. 아침은 부담되지 않게 누룽지를 끓였다. 밥은 전기밥솥에 했고, 마른 누룽지를 가져왔다. 누룽지, 참 신기한 이름이다. 누렇게 된 밥알, 타지는 않고 밥솥에 눌러서 구수한 내음을 풍기고 물을 넣고 끓이면 숭늉이 되는 그것, 실패한 밥일 줄도 모르는 것이 위에 부담을 줄여주는 무엇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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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중에 영아리오름을 오르다 정말 피곤했다. 피곤할 땐 역시 고깃국이다. 어제 담아놓은 쌀뜨물을 꺼냈다. 하나로마트에서 산 양지도 꺼낸다. 무를 사각 모양으로 썬다. 중불을 켜고 참기름을 두른다. 양지를 꺼내고 약간의 소금 간을 한다. 고기 겉이 익어서 붉은기가 사라지면 무를 넣는다. 센 불로 높이고 국간장 세 큰 술 정도를 넣는다. 액젓이면 더 좋지만 여행지에서는 호사이다. 그리고 쌀뜨물을 자박하게 넣고 끓인다. 무와 고기에 맛이 들어간다. 어느 정도 무 색깔이 변하면 쌀뜨물을 다 넣고 끓여준다. 오래 끓일수록 맛이 좋은 것 같다. 무가 다 익어서 후후 불어서 목 넘기기 좋을 정도가 되었을 때 마늘과 파 양념을 하고 간을 본다. 성공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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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가 커서 여행 마지막 날까지 남을 것 같다. 무채를 썰어 무나물을 했다. 무나물은 다른 것보다 무가 얼마나 익어서 단맛이 나오느냐에 관건인 것 같다. 참기름을 두르고, 국간장 약간에 소금 간을 하고 계속 볶는다. 무가 안 익는다 싶으면 뚜껑을 덮어서 익히듯 볶는다. 무에서 물이 나오고 단맛이 흘러나온다. 무 색깔이 투명해지고 흐물흐물해지면 꺼내서 먹는다. 그리고 역시 몸보신엔 계란 프라이다. 하나로마트에서 동물복지 유정란을 샀는데 그 노른자 빛깔이 맛있는 감귤빛 같다. 홀랑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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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새별오름에서 전문 사진가와 함께 스냅사진을 찍었다. 오.. 밥 한 끼 맛있게 먹는 값인데 아직 사진을 받아보지 않았지만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내일 중문의 바닷가 스냅사진 촬영도 예약했다. 내가 알기로는 사진을 잘 찍는 사람들은 찍히는 사람, 혹은 피사체에게 말을 건다. 특히 사람이라면 그가 편하게 표정을 지을 수 있도록 칭찬하고 자신감을 준다. 그 표정들은 살아나고 만족스러운 사진이 만들어진다. 재료가 무엇이든.

새별오름에서 지는 해의 빛을 받아 사진을 찍고 해를 눈 속에 담아 숙소에 어두워질 때 도착했다. 몸을 녹이는 데는 라면을 이길 수 없다. 라면은 역시 레시피대로 끓여야 한다. 레시피대로 끓이지 않았는지, 약간 실패. 굳이 변명하자면 인덕션은 불이 약해 제대로 끓지 않았다는 말은, 그러나 먹은 양이야 상상을 초월한다. 배가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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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별오름에서 재배한 귤을 직접 파신다는 얼굴이 까만 노인을 만났다. 귤 일단 먹어보라면서, 어쩌다 보니 천혜향, 한라봉, 황금향까지 모두 5천 원어치씩 샀다. 노지 밀감을 한 움큼 덤으로 주신다. 내친김에 하나씩 까서 비교를 해본다. 6시 방향이 황금향 8시 방향이 한라봉 12시 방향이 천혜향 3시 방향이 노지밀감이다. 흰색 섬유질이 붙은 것을 보면 껍질을 까는 정도를 가늠해볼 수 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잘까지는 순서 한라봉> 밀감> 황금향> 천혜향

과즙의 양 황금향> 한라봉> 밀감> 천혜향

겉모습 천혜향> 한라봉> 밀감> 황금향

선호하는 맛 한라봉/천혜향> 황금향> 밀감

이었다. 가방에 가득 감귤류를 담았다. 이제 간식은 걱정 없다.


음식,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생존에 맞닿아 있으면서도 사치의 재화이다. 감귤류 하나에도 구별 짓기는 만들어진다. 그리고 어떤 그릇을 쓰느냐, 어디에서 온 재료를 쓰느냐, 어떤 조리도구를 쓰느냐도 큰 차이점을 보인다. 나의 모습이나 기존 카메라와는 달리 참 매력적으로 사진을 찍어내는 전문가의 손길과 카메라 도구들, 인간은 그것을 보고 '와'라는 탄성을 만든다. 자연물과 인간이 결합한 그 무엇, 대부분 삶의 장면이 그것이라 한다면 또한 그 시간이라 한다면 생각해볼 것은 가치의 경중이라기보다는 어떤 행위 가치라도 존중이 먼저가 아닌지, 상대적인 것보다 판단 중지가 인문학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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