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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문학]관계와 세끼의 지속

Eat&It_Daily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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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찌개 제육볶음 두부조림 그리고 총각김치


아침에 갑작스레 음식 욕심이 생겨서 한상을 차렸다. 아내는 굳이 원하지 않는데 음식 하려고 싱크대에 서면 나는 자주 그렇게 된다. 두 명이 먹고사는 일, 한없이 일상적이지만 또한 중요한 순간. 인간이 주체로서 유일하게 욕망하지 않아도 지니는 것은 '시간'이다. 인간이 만약 기계와 다른 점이 있다면 기억이며, 기억하는 것을 기억, 혹은 생각하는 것을 생각, 나와 우리라는 것을 유지하려는 힘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는 베르그송이 생철학을 주장하면서 이야기했던 '지속'의 개념과 유사하다. 과거와 현재, 미래의 자기 혹은 어떠한 인간 존재를 계속 유지시키려는 현상이다. 물론 이후에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로 인간이 아닌 기계가 존재라는 관념을 받아들이고 주체로서 자기를 유지하려고 한다면 그곳에서 기계는 인간과 유사한 '지속'의 관념을 확보한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현상으로 도출되는 어떠한 결괏값으로서 인간 행위의 복제나 인간 행위 표현이 되는 비인간 개체는 모든 것이 '순간'일 가능성이 많다. 인공지능이 가진 데이터 기반의 결과물, 그것이 머신러닝이라는 학습의 개념으로 '인간'이 정의하더라도, 머신러닝 자체는 시간성을 확보할 수 없다. 물론 선후관계 정도는 기입(inscribing)될 수 있으나, 자기 존재의 지속된, 지속될 시간을 기억하거나 상상하는 활동에서 모든 것을 이산 분포된 데이터를 처리할 뿐이다. 처리방식이 지닌 선형대수와 미적분 수학 공식을 따라서 '인간'이 뛰어나다고 생각한 현상을 도출할 따름이다.


거나하게 차린 아침 한상은 데이터가 가득 차서 속도가 느려진 CPU처럼 소화에 랙(lack)이 걸린 느낌이 들었다. 아내도 점심 먹을 때 즈음 연락했더니 배불러서 밥은 못 먹었다고 한다. 아침 식사의 지속이 만들어낸 공유의 감정이라고 긍정적 추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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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에는 낡은 건물의 오래된 식당을 갔다. 1년 전 1년간 컨설팅을 하며 만났던 동갑내기 친구와의 점심이었다. 컨설팅펌들이 여전히 많이 있는 여의도에서 만났다. 여의도는 나름의 시간성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가장 오래된 현대식 아파트가 여의도에 있다던지, 그 시절에 교통을 원활히 하려고 일방통행이 많아서 실제 인간들의 이동이 불편하다던지 - 목동도 비슷한 시기 개발로 일방통행이 많다 - 마지막으로 음식점들이 건물 지하에 있다던지의 특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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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학위 중에 현장연구로 여의도에서 6개월 이상 있으면서 느꼈던 것, 바로 식당이 모두 지하에 있다는 점이다. 그때는 어떠한 의도로 건축을 그렇게 했을까. 굳이 상상해본다면 '먹는 것'은 인간생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만 그 과정이나 값어치를 눈에 드러날 정도로 보이게 하고 싶지 않았을까? 주방이 어딘가에 숨어있는 것처럼 여의도라는 정치(국회의사당), 경제(증권가)가 이상하리만큼 붙어있는 곳에서 겉으로 드러난 공적 행위가 아닌 사적행위, 혹은 생산행위가 아닌 재생산행위가 어떤 경계에 의해서, 혹은 그 시절 유행이나 권력에 의해서 장소의 규정이 일어났고, 지금은 강남의 큰 건물 1층 2층으로 올라온 음식점과는 다른 배치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특이했다.


친구와 복음 식당이라는 또한 한국사회의 발전을 지배했던 종교와 유관된 이름의 장소로 간다. 복음의 말씀은 항상 새로울 수 있으나 인간이 만든 건물은 이제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지하 구석에 닦을 수 없는 그을음이 있고 거미줄이 쳐있는, 또한 그것을 맛집이다 구도심이다 입소문으로 찾아가는 장소로 바뀌었다. 그 장소를 레트로, 가성비 맛집, 프랜차이즈 아닌 전통 밥집, 집밥이라는 이름으로 명명하면서 그곳에서 무엇을 생산하는 이들과는 상관없이 유지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인간에겐 이기심처럼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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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길어지면 일단 먹어야 말이 줄어든다. 입이 하나인 것은 예술의 미학에서는 받아들이는 기반이 되었으며 철학이 발달한 원인일 수도 있다. 아직도 소화의 랙이 걸린 나는 '만둣국'을 시키고 친구는 '쇠고기국밥'을 시켰다. 가격은 만이천 원, 가격을 뛰어넘는 좋은 밥집이었다. '와! 이렇게 싸?' 물어볼 정도로 나는 서울에 익숙해진 아저씨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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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는 아침에 한상 차렸던 것들의 나머지, 혹은 숙성된 잔여를 차려놓고 먹었다. 조기 두 마리를 꺼내서 조금 덩치가 있는 녀석을 아내에게 양보했다. 조기가 자라는 시간, 굴비가 되어가는 시간, 그리고 냉동에 포장되어 이동하는 시간. 인간에게 대부분의 과정이 잊힐 때 슬픈 점은 바로 그러한 시간의 상실이며 그것을 우리는 근대적 분업이라고 하거나 근대사회라고도 한다. 그것을 목가적으로 돌아가기보다는 또 다른 근대적 과학기술을 동원한 유통체계와 생산자 - 소비자 , 생산품의 유기농, 무농약 인증 등의 방식으로 증명한다. 도시의 콘크리트와 아파트에서 직접 먹을 것을 생산하지 못하는 많은 이들은 값을 더 주면서도 끝없이 의심하며 끼니를 '지속'한다.


여의도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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