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t_Daily Report
아침에 마스크를 찾으러 다니며 오랜만에 동네 맛있는 떡집인 인왕 떡집에 가서 찹쌀 시루떡을 샀다. 마스크를 찾다가 너무 일찍 나가는 바람에 구매는 실패했고 떡은 원래보다 식었지만 떡의 맛은 상당히 좋다. 2천 원 치 사서 집에 남은 그린티 라테 함께 먹었다. 예전에는 떡은 특별한 날에만 먹었을 것이다. 그 시절 조리도구를 가지고 쌀을 씻고 쌀을 빻고 분말을 찌고 고명을 만들고 기타 등등의 노력은 떡의 전문가가 했다. 그의 손에 얼마나 이익이 떨어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생략된 과정과 고품질의 결과물은 인간 행위에 있어서 가치를 그리고 전문성을 다시금 느끼게 해 준다.
아내는 학교로 출근을 하고 나는 점심을 간단히 라면을 끓여먹었다. 이것 역시 오랜만에 먹는 라면이다. 오징어 짬뽕에 초록마을에서 산 만두를 몇 개 넣었다. 어머니가 만드신 김장김치는 역시 라면에 잘 어울린다. 오징어 짬뽕, 오징어는 거의 느껴지지 않지만 라면 중에서 꽤나 맛있는 라면이다. 이 라면을 밀가루를 치대서 반죽을 하고 면을 튀겨낸 뒤 스프를 만들고 재료를 손질하려면 얼마나 고된 노동과 많은 시간이 소요될까, 몇 백 원이면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이 오묘한 먹거리 산업의 근대화는 삶의 변동성을 크게 가져왔다.
어제 초록마을에서 샀던 무항생제 삼겹살을 구웠다. 밥 먹기 한 시간쯤 전에 아내 퇴근 시간에 맞춰서 홍제역 앞 어사또라는 해물 가게에서 새우 서른 마리 정도 만원과 전복 6개 만원을 주고 샀다. 구워 먹는 맛이 기가 막히니까. 채소는 로메인으로 준비했고 아내와 중요한 일정이 끝나서 소주와 맥주를 사서 기념했다. 오랜만에 소주를 마셨다.
삼겹살에 기름이 나올 때 즈음, 말하자면 한번 정도 뒤집을 때 새우와 전복을 넣는다. 새우와 전복이 돼지기름을 만나서 맛있게 구워진다. 갈색빛 - 뭐 마이야르 반응이라고 하던데 -으로 구워진 삼겹살을 먹기 좋게 자른다. 새우를 뒤집어 준다. 전복도 원래 껍질을 불판 쪽에 놓았다가 뒤집었다. 아 전복 탱글탱글 맛있고 새우는 까기는 뜨겁지만 좋다.
나는 전복을 잡거나 생선을 간단히 손질할 때마다 미안함과 아픔을 느낀다. 전복 손질은 보통 차가운 물에 칫솔로 약간의 물 때를 벗겨내고 난 뒤에 숟가락으로 전복 살과 껍질을 분리한다. 말하자면 전복의 멱을 따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마지막 안간힘을 쓰는 전복이 살이 툭하고 떨어지면 살이 금세 경직된다. 부드러웠던 그 살이 딱딱해진다. 몸을 가진 인간도 비슷할 것이다.
새우는 죽어있는 냉동상태라 괜찮긴 한데 새우 등의 껍질 틈에서 내장을 꺼내고 머리를 손으로 꾹 눌러 분리시킨다. 툭 터진 내장과 뇌, 새우의 얼어 죽은 고통도 잠시 입으로 냉큼 넣어버린다. 새우와 전복이 인간이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냉큼 해물 손질 작업을 한다.
예전부터 피를 묻히는 직업은 최고위직이거나 천민계층이었다.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동물의 피를 쓰는 사람은 제사장이었다. 혹은 다양한 부족들의 문화에서는 금기를 없애기 위해 동물피를 바르기도 한다. 반면에 백정이라는 계급이나 망나니라는 직업은 가장 천대받는 직업이다. 신성과 세속은 굉장히 맞닿아 있다. 금기를 만드는 사람은 권력자이고 금기를 어기는 이는 처벌 대상이다.
먹는 입과 말하는 입은 같은 신체의 기관이지만 그 쓰임이 다르다.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고 삼겹살로 쌈을 사는 손과 고기를 잡으려고 피를 묻히는 손과 전복을 죽이려고 애쓰는 숟가락은 동일한 도구이다. 먹는 것의 바깥에는 먹는 것을 죽이는 손과 먹는 것을 만드는 손이 있다. 귀중하지 않은 끼니는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