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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문학]음식의 지겨움

Eat&It_Daily Report

영화 [건축학개론]은 첫사랑의 애틋함이라는 줄거리도 있지만 '낡은 것들, 오래된 것들'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특히 해외로 떠나는 아들이 혼자 남는 어머니에게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말도 하지 못하며 건넨 말이 기억나는데, 여전히 촌스러운 티셔츠를 입고 냉장고에 유통기한이 언제인지도 모르는 식재료를 담아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엄마는 집이 지겹지도 않아?' 물어본다. 어머니는 '집이 지겨운 게 어딨어, 집은 집이지.'라고 말한다.

밥은 밥이다. 우리는 열흘 연속 밥을 먹었다고 지겹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별식으로 먹는 밀가루 음식이나 끼니가 궁할 때 먹었던 라면이 질린다는 얘기는 하더라도. 지겨울 만도 한데 지겹지 않고 잠시만 먹지 않아도 허전해서 생각나는, 여행을 다녀와 공항에서 된장찌개와 김치찌개를 시키고 입맛을 다시는 모습을 보면 지겨움은 정겨움으로 혹은 삶의 익숙한 오솔길로 생각된다.


떡볶이는 참 지겨운 음식일 수 있다. 나에게도 그렇다. 나는 술을 마신 이유로 떡을 즐겨 먹지 않는데 떡볶이는 당최 잘 질리지 않는다. 게다가 쌀떡이라도 있을 참이면 밥을 대신한다고 좋아하며 떡볶이집을 간다. 하루에 한 끼는 밥을 먹어야지 할 때, 밥에는 쌀로 만든 음식을 모두 통칭하는 암묵적 의미망이 있다. 지난번에 맛있던 떡볶이집 덕자네 방앗간에서 든든한 세트를 시켰다. 직접 가래떡을 뽑아 만든 떡에 독특한 양념이 있고 감자 샐러드가 올려져 있다. 급히 먹다 보니 쫄면을 못 찍었는데 쫄면을 가위로 잘게 쪼개서 숟가락으로 먹는다. 어묵이 나오고 김밥도 나온다. 밥이 여기저기에 있다. 오늘도 역시 맛있게 먹었다. 다시 찾은 곳, 맛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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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 소스는 독특하다. 맛있다. 대부분 소스가 남아나지 않는다. 김밥을 찍어먹기도 어묵에 묻혀먹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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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지겨운 밥을 먹는다. 된장찌개를 끓이고 생선을 굽는다. 된장찌개에 넣어서 국물을 내는 믹서에 간 멸치를 벌써 다 썼다. 얼마나 찌개를 끓여먹었으면, 벌써 바다를 누비다 그물에 걸린 멸치를 끝장 본 것인지. 살면서 2만 번은 먹었을 김치를 김치냉장고에서 꺼내어 먹는다. 장모님이 해주신 총각김치인데 맛이 좋다. 아내가 특히 잘 먹는 숙주나물로 만들었다. 초록마을의 굴비는 맛이 좋다. 주말에 구이를 해 먹으려고 샀던 새우가 많이 남아 있어 새우장을 했다. 복잡한 조리 방법보다는 간편하게, 새우 내장을 떼어내고, 소금과 맛술로 비린내를 제거한다. 그동안 물과 간장과 설탕, 맛술을 2:2:1:1 정도 비율로 해서 한번 끓인다. 끓인 뒤에 식힌다. 조금 식었을 때 마늘과 양파 향을 넣기 위해서 간장에 담근다. 새우를 가지런히 넣고 간장을 부어낸다. 한 이틀 뒤 냉장고에 숙성시켰다가 먹는다. 까는 일이 귀찮지만 장아찌나 저장 음식을 만들어 놓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계속 먹어야 하는 밥의 괴롭잖은 평범함은 그렇게 마음에 허전함을 없애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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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동료들과 써브웨이 샌드위치를 시켜 먹었다. 여기도 몇 번째 먹는 것인지, 자취를 하거나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서 그들은 집에서 밥을 거의 해 먹지 않는다. 밥을 챙겨 먹는 사람도 배달의 민족에서 아침 배달 서비스를 활용하기도 한다. 점심이 첫끼인 사람들도 많다. 점심 첫 끼를 샌드위치로 먹으면서 그들은 이것이 완전식품이라고 말한다. 그럴 만도 하다. 먹기 어려운 야채가 그득하게 들어있고 고기도 있고 빵도 있고 적당한 단맛과 기름기도 있다.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에 비타민까지 있는 것, 그렇게 생각하니 더 맛있어진다.


이제 15년도 더 전에 나는 미국 버거킹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다. 미국인들이 자주 가는 휴양지였던 보스턴 옆 케이프 코드였는데 한 겨울에 가다 보니 휴양지는 구경도 할 수 없이 매우 추운 곳이었다. 하루는 눈이 너무 많이 오는 바람에 숙소 문을 열 수 없어서 버거킹에 근무를 쉰 적도 있다. 일이 끝나면 간단히 햄버거 하나를 먹을 수 있었는데 나는 간단히 와퍼를 만들어서 주머니에 넣고 마을버스를 타거나 한 시간 정도 되는 거리를 걸어왔었다. 숙소에 와서 식은 햄버거를 먹으며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 햄버거, 패티는 차가울 정도이고 양배추는 풀이 죽어있는 그 상태. 그래도 그것이 그리웠는지 6년 전에 미국에 다시 놀러 가서 그곳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미국의 대도시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은 변하지 않았다. 정말 하나도 변하지 않았었다. 여름에 갔더니 무더운 날씨에 사람들이 가득했고 휴양지 같은 느낌이 났다. 춥게 걸었던 그곳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살며 한국에서 전혀 느끼지 못했던 무시를 느끼기도 했었고 그들도 비슷한 인간 임도 알게 되었었다.


열흘 동안 밥을 먹지 못해서 물어물어 찾아갔던 아시안 음식점에서 11불짜리 비빔밥을 먹었었다. 고추장은 없었고 약간 매운맛이 나는 소스가 뿌려진 비빔밥이었다. 밥알을 넘기며 느꼈던 그곳에서 안락함은 잊기는 어려운 일이다. 인간에게 음식은 지겨운 것처럼 그리운 것이 없고 새로운 것처럼 질리는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다시 찾은 가게, 자주 먹는 샌드위치 매일 끓이는 찌개와 국, 밥, 반찬들. 그게 음식뿐이겠는가 오래된 관계와 익숙한 것을 익숙하게 여기지 않은 일이 인간이 가진 최전선의 성찰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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