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_Poetry 바깥의 나

마음이 오래 머무는 곳에서 시가 태어나지만 시는 이내 낯설어진다. 시라는 글자에 삶을 바꾸어 놓으면 얼추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런 마음속 소용돌이가 일게 되는 영화 같은 시, 시 같은 영화 이창동 감독의 [시]에 대해서 글을 쓰는 것은 다시 낯설어지며 영화와 멀어지는 길이다. 오래전에 영화 [박하사탕]을 보고 쉽게 영화관에서 일어나지 못했던 순간이나 영화 [버닝]을 보고 복잡한 이야기 굴레를 감독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었는지 황당한 기분이 들었던 것와 유사하게 이 영화는 가장 가까운 삶이면서도 그 곁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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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경기도 이천 맑은 개울물에서 철없는 아이들이 뛰놀고 있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곧 개울물 사이에 맑은 시체가 떠내려온다. 마을에서 한 여중생의 죽음, 그것에 놓인 다양한 죽음 같은 삶과 삶 같은 죽음의 모습이 전개된다. 주인공 미자(윤정희, 실명 신미자)는 중학생 손자를 키우며 기초생활수급자 생활을 한다. 낡은 아파트에서 말을 듣지 않은 손자의 '밥 먹는 모습'을 가장 소중히 여긴다. 그의 또 다른 직업은 요양보호사이다. 마을의 몸이 불편한 노인(김희라)을 씻겨주고 일정 소득을 받는다. 노인은 말도 따박따박하고 시골 동네의 풍경과 달리 옷을 멋지게 꾸미고 오는 미자가 마음에 드는지 몸이 불편해도 쥐고 있는 꼭 쥐고 있는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하나를 건네서 호의를 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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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자는 딸에게 '시'의 감각이 있다고 들었다. 그 믿음에 이미 모집이 끝난 관공서의 시 창작 강의에 들어가게 어렵게 들어가게 된다. 시를 잊지 않고 시를 기억하는 미자의 마음, 그 마음은 수업시간에 엉뚱한 질문을 하기도, 시가 너무 어렵다며 힘들어하기도 하지만 그는 시인의 말대로 '사과'라는 존재를 깊이 들여다 보기도 하며 이천의 다양한 풍경들을 꼬박꼬박 메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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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미자는 좋은 시를 쓰고 싶다는 간절한 의지와는 상관없이 삶은 두 가지 큰 사건을 맞이하게 된다. 하나는 노인이 죽기 전에 사내구실을 해보고 싶다며 미자에게 추근덕 대는 일을 당한다. 미자는 단호하게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다른 하나는 마을의 상관없는 사건으로 알고 있던 중학생 여자아이의 자살 사건에 미자의 손자와 그 친구들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일이다. 미자는 그곳에서 자리를 피하고만 싶다. 그 죽음의 애도와 뉘우침과 성찰의 행동이 아닌 어떻게든 빠져나가고 돈으로 무마하려는 모습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런 자리에서 학교와 남성 권력들은 여자아이의 일기장과 그들의 핏줄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만 바깥으로 나오지 않게 하려 서로 결탁하려는 모습이 싫었기 때문이다. 자리에 모이자마자 낮술을 하는 모습이며, 오백 만원 정도씩 갹출하자는 모의는 미자의 삶이 그림자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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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쉬하고 모의하는 그들의 모습과 달리 미자는 몇 가지 노력을 한다. 아이의 추도 미사에 몰래 찾아가 운다. 그리고 작은 아이 사진 하나를 훔쳐서 집으로 가져온다. 식탁에 그 사진을 놓고 손자에게 보인다. 왜 그랬는지 다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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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엄마인 딸에게는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죽은 딸의 엄마를 찾아가서 용서를 빌려고 하지만 잠깐의 실수로 그것을 하지 못한다. 대신 아이가 뛰어내렸을 다리에 올라가서 애도를 한다. 마을의 풍경과 달리 아름답게 꾸민 미자의 모자가 바람에 날아가며 강으로 떨어진다. 미자는 그것을 찾으러 강변으로 내려가는데 내리는 소나기를 맞는다. 비를 주룩주룩 맞으며 미자는 빗속에서 메모장을 편다. 무엇인지 모를 것이 툭툭 떨어진다. 미자는 노인을 찾아가 그의 부탁을 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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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자를 둘러싼 바깥의 흐름과 달리 미자에게는 이미 큰 삶의 위기가 찾아왔다. 차츰 명사를 까먹고 동사를 잊어버리는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게 된 것이다. 미자가 그것을 인정하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는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 자신의 시간, 곧 자신이 누구인지 잊는 변화를 결코 바깥에 말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직 타인과의 대화에서 단어를 잊어버릴 때 "내 정신 좀 봐, 내가 요즘 이래요."라고 말할 뿐이다. 누구도 그것에 대해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는다.


이제 시 창작 강의가 막바지에 이르고 다양한 고통에서 미자는 다른 시 낭송 모임에 간다. 그가 기댈 곳은 아무런 물리적 그루터기도 없는 시뿐이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군상은 시를 낭송하면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시를 낭송하면서 또한 다른 것을 이야기한다. 음탕한 농담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미자는 모임 동료에게 그가 경찰인데 비리를 고발했다가 한직으로 밀려난 사람이라고 소개를 한다. 그 모임에 참석한 촉망받는 시인은 술주정을 부리며 시가 무엇 무엇이다라고 말한다. 미자는 두 모습이 모두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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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자는 여전히 손자가 밥 먹는 모습을 가장 소중히 여기며 시를 좋아하고 옷을 잘 꾸며 입는다. 그 옷을 입고 미자는 노인을 찾아간다. 가족의 모임에서 미자는 할 말이 있다면서 입이 비뚤어진 노인에게 글로서 말한다. 오백 만원만 달라고, 솔직히 빌려달라고는 못하겠다며. 체면 때문에 아무런 말 하지 못하는 노인은 협박하냐고 말하지만 오백만 원을 내어 준다. 돈을 모아서 아이들의 잘못은 무마되는 듯 하지만 결국에 누군가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손자는 그 의로운 경찰에게 잡혀가고 미자는 아무 말 없이 손자와 치던 배드민턴을 경찰과 친다. 딸에게는 여전히 손자의 잘못을 말하지 않고 알츠하이머를 말하지 않는다. 다만 시 한 편을 쓴다. 시의 제목은 죽은 여중생의 세례명을 땄다. 시 창작 강의 마지막 시간까지 한 편의 시를 써온 이는 미자 밖에 없지만 그는 또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라진다. 여전히 개울물은 흐르고 있으며 미자가 오랫동안 바라보던 큰 나무 가지 사이 햇살은 들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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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본다, 그러면서도 서로가 부끄럽지 않게 대하는 행위는 모든 언어를 뛰어넘는 표현 방식이다. 행위는 언어에 수렴될 수 없으며 행위는 의도에도 수렴되지 않는다. 행위, 언어, 의도는 모두 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 모두는 은유이다. 음담패설을 하는 이의 행위가 때론 시가 될 수 있으며 오백 만원으로 무엇을 거래하는 행위도 어떤 면에서는 자기만의 시가 될 수 있다. 근대적 사회의 체계나 인간이 공동생활을 하면서 겪게 되는 순수한 소통의 불가능성 - 곧 통약 불가능성 - 은 어디에나 상존한다. 그저 자세히 보려는 노력이 소통의 불가능성을 가능하게 만들기보다 불가능함을 서로 인지하게 해 줄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미자의 시는 마지막까지 무엇을 감추어 냈으며 그의 이전과 나중 시간이 어떻게 꾸려질 것인지는 의도와 언어 행위 모두 명확히 말할 수 없다. 그 말할 수 없음의 개울물, 잠시 비추어 시간을 잊게 만드는 햇빛, 그것의 의도 없음이 가진 온안한 두려움과 무한한 불가능성이 이 영화에서 그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바깥의 말을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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