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It_Daily Report
나는 바닷가와 해산물의 추억이 많다. 방학 때면 꼭 서해 변산반도 근처 계화도에 내려갔었는데 지금은 서울에 올라와 계시는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고종사촌누나 두 명과 친누나와 나 그렇게 네 명이서 모였었다. 할머니는 8월 방학 내 생일 때 케이크를 직접 만들어주시나 각종 해산물이 즐비한 생일상을 만들어주시곤 했다. 나에겐 어릴 때부터 해산물은 익숙한 음식이었으며 지금은 진귀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각종 해산물을 어렵지 않게 먹었다. 남부터미널 버스에 실려온 싱싱한 해산물을 받아 집에서 며칠을 먹었던 기억도 있다.
그중에서도 강렬한 기억은 그곳 말로 '생합' 통상 쓰이는 말로는 '백합'에 대한 것이다. 이 조개는 뻘이 없어서 해감할 필요가 없었고 싱싱한 백합은 생조개로 까서 양념도 필요 없이 먹을 수 있었다. 언제나 가장 큰 생합은 아버지의 몫이었고 자잘한 것들은 생합국을 끓이는 데 쓰였다. 어릴 때 언젠가는 커다란 피조개 구이에서 핏빛 육수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었다. 지금은 먹기 힘든 그 음식들을 그렇게 할머니의 노동으로 먹을 수 있었다.
나도 직접 생합을 잡으러 갯벌에 나간 적이 있다. 그곳 말로 '거래질' - 구글링 했더니 투자의 거래가 나오고 이상한 걸레질 사진만 잔뜩 나온다 -이라고 했는데 빗자루 모양의 나무 막대기 끝에 빗자루가 아닌 철로 삼각형의 틀을 만든 기구이다. 삼각형 틀로 물이 빠진 갯벌을 약 3~5cm 파고 들어간다. 백합이 있으면 철과 백합의 조개껍질이 부딪혀 '딱'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를 듣고 백합을 주워 담으면 되는 일이다. 한두 번 했었는데 뛰 놀기만 했었던 어린 나이에도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한 번은 하도 백합이 잘 잡혀서 배에서 멀리 떠났다가 밀물에 겨우 들어온 적이 있다. 서해 바다는 수심이 낮기 때문에 연안 갯벌도 있고 배 타고 30분 정도 나가서도 다시 갯벌이 나오기도 한다. 그 다시 나온 갯벌에서 백합이 풍년이었다가 큰 일을 당할 뻔하기도 했다. 그때 할머니는 상당히 멋졌던 기억이 난다. 소위 뾰족구두를 신어본 신여성이었으며 반에서 항상 1등을 해서 일본말로 수상 소감을 말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물론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인 시대였지만. 이제는 기력이 많이 쇠해지셨고 멋도 부리지 못하고 있지만 바다를 누비고 맛깔나게 음식을 해주시던 기억이 나에게는 남아있다.
홍제역 3번 출구에 어사또라는 해산물 파는 곳에서 백합 한 바구니를 오천 원에 팔고 있었다. 이 곳은 왜 그렇게 싼 지 궁금할 정도인데, 일단 백합 한 바구니를 샀다. 그 빛깔이 예전에 할머니 댁에서 먹던 싱싱하고 아주 검푸른 빛이 선명한 백합은 아니었으나 백합은 백합이었다. 해감할 필요 없이 조개껍질만 깨끗이 씻은 다음에 찬물에 넣고 끓이다가 - 그래야 조개껍질이 잘 열린다 - 마지막에 기호에 따라 다진 마늘과 다진 파정도만 넣어주면 소금 간 필요도 없이 맛있게 익는다. 백합국이 뚝닥 완성이다. 어머니가 보내주신 김장김치와 길 가다 샀다는 돼지갈비용 고기를 다듬어서 김치찜을 했다. 뭐 김치찜은 김치가 맛을 좌우하고 한 시간 넘게 끓여주면 맛이 없을 수가 없다. 굳이 간을 한다면 국간장 2, 설탕 1, 맛술 2, 매실액 1, 다진 마늘 2, 고춧가루 1 큰술 정도 넣어주고 마지막에 대파를 송송 썰어 넣으면 완성이다.
다음날 아침에는 전날에 고기 위주로 먼저 먹었던 김치찜에 남아있는 김치를 손으로 주욱 찢어 먹었다. 끓일수록에 더 깊은 맛이 있다. 약간의 매콤함을 달래줄 계란을 스크램블 해서 - 계란말이 하려다가 자주 실패한다. - 먹었다.
마트에서 베트남산 깐 새우를 구매했다. 작년 5월에 부모님, 누나, 내가 스위스 이탈리아 여행을 갔었는데 이탈리아 마트에서 산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를 자박하게 넣고 편 마늘을 넣고 끓이다가, 새우와 어제 남은 백합을 넣고 약 5~7분 정도 끓여준다. 소금 간 정도만 하고 매콤함을 원할 경우 집에 있는 매운 고추 한 큰 술 정도를 넣는다. 술안주로 제격이라는 '감바스'의 완성. 오천 원 백합의 약 2천 원어치가 2만 원 감바스가 되었다. 담백한 맛이 좋다.
두 번째 요리는 백합술찜. 올리브 유를 감바스보다는 적게 두르고, 백합을 깔아 놓는다. 불을 올리고 맛술 반 컵 정도를 붓고, 버터 3큰술 정도와 대파를 넣는다. 그리고 끓여주면 간할 필요도 없이 버터의 풍미가 아주 신박한 백합술찜이 된다. 두 요리 중에서 백합 술찜이 더 맛있었다. 감바스는 거의 안 해봐서 그런지 담백함이 강했다. 이어서 스파게티 면을 넣어서 올리브 파스타를 먹었다. 둘 다 맛이 아주 좋았다.
오천 원의 백합 한 바구니가 어떤 손을 거쳐 내 식탁에 까지 왔는지 나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어린 시절 갯벌을 누볐던 기억, 그곳에서 꼿꼿이 서있던 할머니의 거래질. 온갖 바다의 것들을 먹으며 자란 백합의 희생, 그것을 잡아 올려서 내 입 앞에까지 들어온 현재. 자본주의 시대의 생산과 소비의 분리는 가장 큰 소외의 순간이다. 내가 만든 혹은 잡은 생산품이 내가 직접 소비할 수 없이, 임금 정도만 받고 생산품과 분리되는 그 수많은 기억이 자본주의 및 현대사회 경제체제의 특징이다. 금화이던 종이돈이건 어느 것 하나를 써도 물고기 낚싯밥으로 쓸 수 없다. 돈으로 구매해서 먹는 음식 또한 마찬가지이다. 입고 있는 옷부터 그 무엇 하나 인간의 손길이 지나치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여전히 생각해볼 것은 그 수많은 손길에 대한 기억이며 오천 원이 뚜렷이 계량화할 수 없는 자연과 인간의 앙상블에 대한 존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