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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브로_김정수 [자목련]

Cover the Poem(커버시)


자목련 / 김정수

나무 위로 전선 지나간다며 

무지막지하게 가지 잘린 나무

봄이 와도

꽃을 피우지 못한다 생은

햇빛 마중하는 일인데, 그대로

울음통이다 안으로 잦아드는 통에

새 한 마리 불러들이지 못하는

그 나무 곁을 지나다닐 때마다

보면 안 되는 걸 본 듯

들으면 안 되는 걸 들은 듯, 하여

일부러 멀리 돌아다녔다

내 안의 울화통 밖으로 들썩이던

어느 무심결에

꽃 한 송이 밀어올린

자목련은 보았다 한번은 쏟아내야 할

화, 마침내 세상에 드러냈다

두고두고 속으로 꽃피운

환장하게 환한 빛깔이다


꽃은 아름다울까요? 그 느낌은 오롯한 내 감정일까요? 꽃은 자기나름의 삶의 경로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것을 바라본 사람마다의 느낌입니다. 통상 꽃은 사랑의 고백으로, 권력의 상징으로, 최고의 순간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 시에서 시인은 꽃은 생의 덧없음으로 어떤 힘든 과정의 잠깐 단맛으로 울화통에서 밀어올린 드러냄으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 

이 시의 장면은 가로수 혹은 아파트 옆에 있는 공터에 있는 자색 목련이 꽃을 피울 봄이 되었음에도 이내 피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사람들의 필요로 몸의 한 부분이 잘려버린 상황이기도 합니다. 생이 햇빛 마중하는 일입니다. 생의 밝은 면을 강조했다기 보다는 그러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 평범하게 살아내는 것이 삶이라고 합니다. 매년 봄이 되면 꽃이 피어야 하는데, 새 한 마리 쉴 곳 마련하는 것인데, 겨우내 참았던 눈물이나 울화통이 터져 나와야 꽃인데, 그것을 못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몸이 잘린 나무를 가까이서 어루만지지도 그렇다고 물끄러미 쳐다보지도 못했습니다. 

시인의 울화통은 무엇이었을까요. 개인적으로는 시가 써지지 않음에 대하여, 삶의 버거움에 대하여, 사회적으로는 나무를 댕강 잘라버리는 차가움에 대하여, 그 차가움을 바라보지 않는 무심결에 대한 울화통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꽃은 자색의 목련은 죽음의 보랏빛을 자기의 생긴대로 무심결에 피어냅니다. 무심의 상황, 몰입의 순간, 나무가 꽃이 되려고, 꽃이 씨앗이 되려고, 무엇이 무엇이 되려고 삶은 진행되지 않겠으나, 그 순간이 겹쳐 꽃잎을 이루고, 꽃이 떨어져 잎사귀가 나고, 새들은 쉬고 다시금 잎사귀는 떨어집니다. 



내 삶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요? 무엇을 이루려 했던 마음, 그것이 진정한 삶의 목적이라는 마음 가짐은 하나의 고된 울화통 치미는 자기 혐오일 수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 열망은 삶의 경로, 살아냄에 대한 생각보다는 삶의 방향과 속도에 대한 애씀이겠네요. 무심결에 밀어내듯 피는 꽃처럼, 작은 무엇을 이루었을 때, 목적에 닿았을 때 그 이후의 시간은 나에게는 어떤 시간으로 나타나고 다져질 수 있을까요? 목적이외의 흩어진 것들, 잡아두지 않으면 도망가고 사라질 것 같은 미풍을 느낄 시간은 나에게 있을까요? 갑자기 어제 오늘 춥습니다. 어떤 이는 그나마 핀 꽃이 떨어지지라 걱정하기도 하고 세탁소에 맡겼던 겨울옷을 찾아 입어야 하나 생각합니다. 꽃 피는 것을 샘하는 겨울의 끝자락 추위가 꽃샘추위라고 합니다. 무심결에 바람이 불고 꽃은 떨어질 것입니다. 추위가 있으니 누군가의 손길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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